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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2018. 2. 22. 12:14


10  슈베르트.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2번 A단조 D.385>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아르페지오 소나타 A단조 D.821>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3번 G단조 D.408> <현악 4중주 14번 D단조 D.810 죽음과 소녀> <피아노 소나타 21번 B플랫장조 D.960-1> <8중주 F장조 D.803> <네 개의 즉흥곡 D.899> <교향곡 8번 미완성 B단조 D.759>


09  MRI 장치에 누웠다. 도저히 참기 힘들면 꼭 쥐어 신호를 보내라는 공기버튼을 오른손에 쥐고, 커다란 헤드폰을 쓰고 자기공명영상장치로 들어갔다. 눈을 꼭 감았다. 귓전에서 칼날 같은 소음을 내며 기계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구리가 아니라 내 구역인 양평이기 때문인가? 의외로 편안했다. 기계의 날카로운 소리가 전위적인 전자음악처럼 들렸다. 그 박자에 왼손 검지손가락을 까닥일 지경이었다. 격세지감이로구나. 2년 4개월 전, MRI 동굴 속의 나는 그 시끄럽고 어둡고 추운 곳에서 곧 죽을 것 같아 고통스러웠었는데. 많이 컸다. ㅎ


07  아이가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같이 촛불을 끄고 내가 말했다. “이만하면 이미 내 삶은 완성된 것이고 다 이룬 것이네. 그러니 성공해야 한다는, 완성해야 한다는 욕망 속에서 불행하지 말고 즐겁게 살아야지. 행복이란 것도 좀 느끼면서.” 원이 말했다. “맞소. 그래. 세상에 태어난 것이 이미 완성된 삶이니. 즐기셔도 돼.” 이야기를 듣고 있던 온이 말했다. “아빠, 그래도 재활은 완성해야지. 그리고 아빠가 다 이뤘다고 하지만 아직 이룰 게 하나 있어. 죽는 거. 죽는 걸 이뤄야지.”


05  원무과 직원이 산재 종결을 위한 제출 자료 목록을 적어주었다. MRI 영상과 영상판독기록지가 포함되어 있었다. 직원이 말했다. “여기는 아마도 MRI가 비급여일 거예요. 영상을 판독할 신경외과도 없어졌구요. 수술하셨던 병원이 어디시죠? 거기서 촬영하면 아마도 급여 처리 될 거고, 판독지도 발급받을 수 있으니까 거기서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그의 말을 듣는 순간 몸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심장이 무겁고 딱딱해졌고, 호흡이 벅차면서 떨렸다. 몸이 기억하고 있구나. 수술 받기 전 부러진 등뼈와 혼미한 정신으로 자기공명영상장치 안에서 겪었던 공포와 고통을. 절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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