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21

노트 2022. 2. 15. 21:13

02

꿈을 꾸었다. 기억나지 않는 스펙터클한 일을 겪고 난 뒤에 연둣빛 풀과 마사토로 이루어진 낮은 산을 오르고 있었다. 낮지만 그래도 정상은 있을 테니 거기까지는 가기로 하고 걸었고, 얼마 후 정상에 올라 경치를 구경했다. 수많은 집들과 지상에 세워진 전철역이 보였다. 쭉 훑어본 뒤 미끄러지며 하산하기 시작했다. 멀리 산 아래에 허름하고 비위생적으로 보이는 조그만 시장이 보였다. 분위기가 음침하고 어두웠으며 더러워 내키지는 않았으나 그곳으로 내려가 어떤 주막에 들어섰다. 나무로 만든 허름한 식탁에 남자 둘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합석했다. 내 앞에 앉아 있는 한 남자의 얼굴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옆에 앉아 있던 나머지 한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더벅머리에 얼굴도 검은 패기 있는 젊은 시절의 그였다. 열변을 토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그의 얼굴을 바다보다 잠에서 깼다.

 

03

당사자 네 명이 모여 올 5월에 있을 4인전 콘셉트를 잡을 때 ‘우리 동네’를 제안했었다. 공통점이 없는 네 사람이 각자가 거주하는 마을과 그 마을에서 사는 자신의 이야기를 스케치하듯 가볍게 접근해보자는 의도였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그 작은 공동체와 소통하는 ‘따뜻한’ 느낌도 어필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방향성이나 어설프게 접근할 수 없는 사회적 이슈에 대한 의견을 막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다행히 그 제안은 받아들여졌다.

며칠 전부터 밑그림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말했던 ‘소통’과 ‘따뜻함’을 우리 동네에서 찾으려 애썼으나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생각해보니 나와 ‘우리 동네’는 그 어떤 유대도 없는 관계였던 것이다. 그저 주소상의 행정구역일 뿐이고 물리적인 위치에 불과했다.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마을 커뮤니티와 전혀 연관이 없었고, 마을 사람들은 고사하고 한 빌라에서 거주하는 이웃과도 모르고 지냈으니 그 어디에 공동체의 따뜻함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우리 동네’는 나에게 무엇인가? 이 동네에 어떤 정을 준 적도 이 마을로부터 어떤 정을 받아 본 적도 없는 내게 이 거주지로써의 공동체는 무엇인가? 뿌리내리지 않았으니 정주라 말할 수없는 한 때 머물며 삶을 영위하는 곳이다. 어디로 가는지 알지는 못하지만 건너가는 지점이니 늘 낯선 경유지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 마을의 유목민인가? 그렇다. 그것이 정직한 관계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떻게 유목을 표현할 것인가이다.

 

04

나는 열정적이지 않다. 정열도 없다. 재능이 넘치지도 않는다. 목적 지향적이지 않고 확고한 삶의 목표도, 이루고자 하는 어떤 명예에 대한 욕구도 미미하다. 활동적이지도 않고 사교적이지도 않다. 관계 속에서 내 사회적 위치를 찾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간혹 허무에 휩싸여 가라앉으면 다시 떠오르기가 쉽지 않다. 나를 추동해 건져 올릴 구체적인 계기나 욕망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삶을 적절한 선에서 유지할 수 있을까? 루틴이다. 하루를 정해진 계획에 따라 습관처럼 사는 것. 시간을 적절하게 분배해 짜놓은 동선에 따라 운동하고 기립기 서고, 글 쓰고 그림 그리고 독서하면서 시계처럼 굴러가 빈틈없이 하루를 채우는 것. 생각해보니 그런 루틴에 의한 움직임이 지금껏 그나마 결과를 만들어내 왔다. 미지근하지만 꾸준하게 이어가는 것.

 

05

내 마음 깊은 무의식에는 ‘허무’가 자리하고 있다. 이 무의식은 간혹 의식으로 올라와 나를 가라앉힌다. 이렇게 나를 침잠하게 하고 무기력하게 하는 허무에 대한 일말의 저항이, 그러니까 허무에게 무작정 휩쓸려가지 않도록 제동을 걸고 그나마 삶을 유지할 수 있게 한 것 중 하나가 아마도 글쓰기를 비롯한 ‘기록하기’가 아니었을까? 내가 지금 여기에서 죽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는 증명으로써의 기록. 기록하는 행위와 그 행위의 결과물을 통해 내가 실존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며 한시름 놓는.

 

06

자정에 소변을 뽑은 뒤 불을 끄고 반듯하게 누웠다. 무심코 창문 밖을 보니 익숙한 별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대표적인 겨울 별자리인 오리온자리였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로 뛰어난 사냥꾼이었던 오리온이 칼과 방패를 들고 서 있는 모습으로 약 60개의 별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오리온의 겨드랑이에 위치해 ‘겨드랑이 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베텔기우스와 왼쪽 다리를 이루는 ‘왼쪽 자리’라는 뜻의 리겔과 오리온의 허리띠를 이루는 삼태성이라 불리는 세 개의 별이 보인다. 홍천에서 아버지와 함께 보았던, 장미빌라 옥상에 올라 아들과 함께 보았던 별자리. 서서 걸으며 보는 별과 누워 등뼈를 추스르며 보는 별은 또 다른 맛이었다.

 

08

나는 의심이 많다. 무엇이든 쉽게 믿지 못한다. 그래서 적을 두지 못하고 정주하지 못하고 아웃사이더의 삶을 산다. 사회적 관계나 인간관계도 미지근하게 서걱거린다. 불편하기도 하고 간혹 외롭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체질 때문에 어느 한 곳에 빠지지 않아 다행이라 여긴다. 한 집단에 자신을 동화시켜 집단의 이익을 자신의 세계관이라 여기는 지금 이 시절에는 더욱 그렇다. 관조하는 제3자의 비겁이라 욕해도 할 수 없다. 아무 의견 없는 것이 어떤 조직적 확신보다 덜 무섭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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