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12

노트 2010. 11. 11. 15:27

요즘 자전거와 목하 열애 중인 ㅈ씨가 김경의 자전거에 관한 글을 올려놓았다. 글쓴이는 도심에서 자전거 타기가 어려운 것을 아쉬워 하고 '하나같이 엉덩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스판텍스 운동복 차림'으로 한강을 폼나게 질주하는 남자들이 꼴보기 싫다고 썼다. 동의한다. 나도 그 꼴, 마뜩치 않다. 오르 내리는 산에 비해 과하게 기능적이고 패셔너블하며 값비싼 등산복 차림으로 몰려다니는 이들을 보는 것 처럼.
글쓴이는 이런 우리나라 상황에 빗대어 뉴욕의, 뉴욕 문인 사회의 오래된 전통인 '자전거 보이'를 언급했다. 도심을 자유로이 오고 가는 자전거를 '더 크게는 문학 사회의 정신적 우월성을 보여 주기 위한 수단'이라 했다. '그래서 그들은 스판텍스 운동복이 아니라 리넨 정장 차림으로 자전거를 탔'다고. 상상해 보니 그 광경 또한 아름답지 않다. 스판텍스 운동복이나 리넨 정장이나 허영과 과시에 있어서는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한때 얼터너티브 락을 즐겨 들었었다. 간단한 악기 구성과 단순무식한 리듬, 무식하지 않은 가사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들이 공연할 때 입었던 옷 - 면 티, 셔츠, 청바지 등의 평상복이 보기 좋아서이기도 했다. 자전거를 타고 산에 오르고 악기를 연주하는데 무리가 없는 정도의 그저 늘 입고 다니는 옷, 좋지 아니한가?(20)

삶이 아니 살아가고 있는 내 모습이 지저분하고 지리멸렬하며 지겹게 느껴진다. 단정하고 싶다. 하여 고심 중이다. 금주와 채식. 금주는 상상도 해보지 않았던 것이고 채식은 때때로 원했던 것이다. 의지가 박약한 나에게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니 애써 결행해야 하는만큼 집중적으로 고민해 보고 조만간 가부 간에 결론을 내릴 터.(19)

여차저차 어느새 새벽 한 시가 다 되어간다. 아내와 아이 사이에 눕는다. 집이 건조한 탓인지 양 쪽에서 쌕쌕 숨을 쉬고 있다. 그 사이 사이로 달달달달 - 고장난 시계 소리가 들린다. 가만히 아내의 손을 만지고 아이의 손을 조물거린다. 그래, 손을 잡고 가야지. 어깨에 올려놓고 가지는 않으리라.(17)

배추 백 포기. 김장을 끝냈다. 따뜻한 날씨가 한몫 거들어주었다. 여성동지들이 배추를 저리고 무를 썰고 저린 배추를 씼었으며 속을 넣었다. 끼니 때마다 음식 준비도 도맡았다. 남자들은 배추의 물기를 뺐고 머리를 잘라냈다. 배추 속과 깍두기를 버무렸고 항아리를 묻을 땅을 팠으며 당근을 캤고 썰렁한 밭 이곳저곳을 정리했다. 끼니 때마다 설겆이를 담당했다. 아이들을 돌보기도 했다. 그리고 함께 술을 마시며 웃고 떠들었다. 모두들 수고 많으셨다. 고맙다.(14)

아버지가 주신 한국 현대미술가 22인의 인터뷰집을 읽는다. 일반인들은 모르지만 회화를 전공한 이들은 알만한, 한국 미술사에 족적을 남긴 이들이다. 인터뷰 내용은 자화자찬이다. 자신이 한국 최초이며 순수이고 유일이며 열정이고 실험이라 말한다. 예술혼이며 역사라 말한다. 그들이 한 시절, 열정을 다해 작업에 매진했다는 건 인정할만 하다. 그러나 그것이, 성공과 명예와 부가 단지 그들이 홀로 이룬 것들일까? 알게 모르게 사람과 여건과 상황, 그리고 시대의 흐름 등에 의해 적지 않게 도움을 받은 건 아닐까? 이렇게 말했으면 좋겠다. 나름 열심히 작업했고 운도 좋았노라고.(12)

솔직함을 미덕으로 여기며 소위 '쿨'하다 말하곤 한다. 허나 솔직함, 그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아니다. 애써 감추는 것과 부러 드러내는 것은 전혀 다른 듯 하지만 사실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12)

전화벨이 울린다. 낯선데 분명 내 전화기에서 나는 소리. 어, '자전거 여행'이었는데 언제 바뀌었지? 어제 저녁 사온이 만지작거리며 놀다 "아빠 꺼"라며 건네주더니 벨소리를 바꿔놓은 게로구나. 벨소리가 마음에 들어 통화를 끝내고 무슨 음악인가 확인해보니 '혼자 있는 시간'. 제목도 마음에 든다.(11)


'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123  (0) 2010.12.21
10122  (0) 2010.12.13
10121  (0) 2010.12.01
10113  (0) 2010.11.23
10111  (5) 2010.1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