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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2010. 12. 1. 10:50

형님에게는 1,000억 퍼주고 강을 살리겠다고 삽질하는데 9조 3,300억원을 배정했다. 이걸 통과시키겠다고 그 난리를 쳤다. 영유아 예방접종 예산은 400억 전액 삭감되었고 방학 중 결식 아동 무료 급식에는 0원을 주었다.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아기를 싸지르던지, 그 아기가 아프던지 배를 곯던지 내 알 바 아니니 분수 껏 알아서 살아라. 나는 내 식구들 좀 챙기고 강이 죽던지, 동식물이 사라지던지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며 살아야겠다. 해먹을 날들이 꼴랑 두 해 밖에 안 남았거든!"  대놓고 버젓이, 너무도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구역질이 난다. 더러운 새끼들.(10)

오래전부터 끼적여오던, 늘 ‘비시非時’라 분류해 놓았던 시들을 본격적으로 정리해보려 한다. 그동안 다 여물지 못한 채 이 파일 저 파일 옮겨다니며, 여기 저기 흩어져 있던 녀석들이 불쌍하기도 하고, 시간을 내 정리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비시’로 유야무야 사라져 버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 친구 시옷의 말을 상기한다. 글마다 그때의 감성을 유지하시라는. 되도록 덧붙이고 빼고 꾸미지 말라는.(10)

피아노 협주곡을 섭렵해 볼까,했더니 동생이 아쉬케나지가 연주하는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1번과 2번을 보내왔다. 한 곡 당 일 주일 씩 집중해 들어보리라 작정하고 며칠 동안 1번을 들으며 작업실을 오가고 있다.
피아노 협주곡 2번 레코드집에 흑백의 연필 소묘로 그려져 있던 작곡에 몰두하는 라흐마니노프의 모습 때문일까? 그 곡을 좋아했던, 지적이고 우울하며 감성적이었던 그 때 누나의 이미지 때문일까? 십 대 후반, 누나와 동생이 턴테이블에 올려놓으면 귀동냥으로 들었던, 아마도 전적으로 피아노 협주곡 2번 1악장에서 비롯되었을  내 기억 속의 라흐마니노프는 우울한 듯 차분하고 지적이며 좀 냉정하기도 했다. 헌데 웬걸. 얼핏 예민하고 젊은 차이코프스키의 냄새도 풍기는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시작부터 끝까지 격정적이다. 피아노가 오케스트라와 함께 높은 파도를 넘기도 오케스트라를 따라 뛰어다니기도 하고 빗겨나 홀로 방황하기도 하며 어우러진다. 피아노는 그 시대를 살았던 라흐마니노프 자신이고 오케스트라는 그를 감싸고 있던 상황과 시대인 것처럼 느껴진다. 하여, 나를 피아노라 설정하고 격하고 날카로운 오케스트라 선율 사이를 걷거나 뛰어본다.(09)

"수많은 눈들이 있다. 스핑크스 역시 여러 눈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수많은 '진리들'이 존재한다. 따라서 그 어떤 진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 프리드리히 니체(08)

대여했다 다 읽지 못하고 반납하기를 몇 번. 니체에 관한 책을 다시 빌려 읽기 시작했다. 번역물들은 용어를 이해하고 문맥을 따라가는 것도 벅차 국내 철학자의 책을 택했다. 
해설에 따르면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종교와 권력 등에 의해 이미 불변할 것처럼 설정된 진리와 도덕은 우리의 삶을 부정하고 우리의 창조력을 파괴한다고. 기존의 가치와 도덕에 순응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가장 위험한 방식”으로 억압하는 것이라고. 도덕에 따른 순응적인 삶이라는 미덕이 악덕만큼이나 위험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
맥락은 다르지만 데이비드 소로우의 말이 떠올랐다. 자신을 노예로 삼고 부리는 감독관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07)

히읗씨 집에 들렀다 Good Morning Blues에 낚여서 하루 종일 듣고 있습니다. Count Basie and his Orchestra가 1937년에 연주한 곡으로 ‘흑인 사회에서 많이 불리는, 오지 않는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는 좀 쓸쓸한 크리스마스 캐롤’이랍니다. 노래를 시작하며 Count Basie가 내게 묻습니다. 안녕하시냐고 잘 지내시느냐고. 답합니다. 요즘 멜랑꼴리한데 그 느낌이 질척거려 좋지는 않다고. 거긴 어떠냐고 물으니 그가 대답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는 무슨.......
‘어쩔 수 없는 비주류, 열패감을 담을 수밖에 없던 음악’이라는 해설이 있는데, 73년 전 미국의 흑인 사회는 ‘비주류’라는 온건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살고 죽는 게 오락가락 하는 차별과 억압으로 점철되었었겠지요.

비주류....... 약 30년 전, ‘호랑이선생님’이란 어린이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우리 집에 티브이가 처음 생길 때 쯤 시작한 드라마였지요. 기억에 남아 있는 건 한 장면. 주인공들이 호랑이선생님에게 칭찬과 상장을 받고 반 아이들은 박수를 치는 대목입니다. 그때 생각했었지요. ‘아마도 내 삶은 상장 받는 저 주인공들이 아니라 박수치는 아이들 중 하나가 아닐까?’ 그때 이미 예감했던 걸까요? 내 삶이 비주류가 될 것이라는 것을.
그래요. 나는 비주류입니다. 사회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평생 그리 살겠죠. 주류에 끼어들 능력도 없고 주류에 편입되기 위해 애쓰며 삶을 소진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주류를 비아냥거리며 나를 위로하고 싶지도 않고요. 아웃사이더가 내 몫이라 인정하며, 막연하고 좀 거창하기는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아웃사이더의 정신을 체득하고 실현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압니다. 지금처럼 별 생각 없이 슬렁슬렁 세상의 주변을 걸어 다녀서야 죽도 밥도 되지 않을 것이고, 당신이 말한 것처럼 치열함이 없다면 그 정신의 한 귀퉁이도 모를 것이라는 것을. 성공이 아니라 내 삶을 위해서 이 멜랑꼴리, 좀 미루어두어야겠습니다. 기분도 바꿀 겸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며 Count Basie에게 인사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06)

리영희 선생께서 돌아가셨다. 이 시대 사상의 선생이자 의식화의 주범으로 해직과 투옥의 반복했던 가난한 삶. 사실에서 진실을 보고 그것을 무기로 실천했던 지성....... 감히 내가 무슨 말을 덧붙이랴. 선생의 글들을 다시 읽어 봐야겠다. 평안히 잠드시길.(05)

덥석 ‘아웃사이더의 정신’ 운운했는데 사실 생각해 오던 것도 아니고 밑그림을 그려 본 적도 없다. 허니 실체가 없다. 어렴풋이 뭉뚱그려 ‘그 무엇’이라 꿍쳐두었을 뿐.
주류의 기획에 말려들지 않는 것? 비주류와 연대하고 그 밑에서 움직이는 것? 적籍을 두지 않는 것? 혹 두더라도 그 중심에 빠지지 않는 것? 몰려다니는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삶을 보되 세상 밖으로는 나가지 않는 것? 인습과 관습, 형식으로부터 자유로운 것?
소녀처럼 낭만적으로 동경해오던 ‘무정부주의’에 대해 알아볼까 한다. 어쩌면 실체가 없는 ‘아웃사이더의 정신’에 살을 붙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04)

월드컵에 십 여 년 들떠 있을 나라를 생각하니 갑갑했는데 잘 되었다. 2022 월드컵 개최 실패 만세.(03)

최근에 몇 사람이 메일을 통해 페이스북 친구가 되고 싶다고 요청해왔다. 오늘도 한 건. 소셜 네트워크 바람 때문인가? 내가 뭐 대단한 사람도 아니니 거절할 이유야 없지만 페이스북에 가입을 해야 한다기에  접는다. 별 이유 없이 그 네트워크의 지지부진한 점點이 되고 싶지는 않다.(02)

"벌써 12월이네요. 한 달이 지나면 마흔이 된다 생각하니 12월이 이미 사라진 것 같아. 내가 마흔이 되다니."
태홍은 말했었다. 서른 다섯이 되면 사는 일 다 알거라 생각했고 다 아는 삶 더 살아서 무엇하리, 아프지 않게 죽는 방법들을 찾아보곤 했었다고. 그랬던 그녀가 서른 다섯을 넘기고 어느새 마흔이 목전이니 당황스럽고 심란할 밖에.
나도 마흔이 되면서 평생 하지 않던 후회도 하며 어지러웠었다. 그렇다고 마흔을 기점으로 삶이 훅~ 달라지지 않았으며 이어서 구구절절 살아오고 있다. 한 고개 넘었다고 삶이 몰라보게 변하겠는가. 태홍도 그러할 것이다.
12월 한 달 동안 많은 생각을 하며 웃고 울겠지. 따뜻하게 맞장구 쳐주며 함께 그녀의 마흔 후를 짚어보리라.(02)

햇볕정책에 우호적이었던 이들도 북한을 욕하고 미미하게 대응하는 정부에 불만을 터뜨린다. 심지어 전쟁불사론을 들먹인다. 단 한마디도 지도 따위 받고 싶지 않은 소위 이 나라의 지도자들은 여론을 등에 업고 자신들의 이익을 계산하며 확전을 주장하고 언론은 부화뇌동한다. 수백만 남녀노소의 목숨이 제 뜻도 아닌 싸움에 내몰려 죽어가는 것이 전쟁이다. 그 와중에서도 결코 죽지 않을, 정치적 이익을 취할 위, 아래 권력의 놀음일 뿐이다. 그들을 위해 나와 내 가족, 내 이웃을 죽이자고? 세상에, 전쟁이라니. 
오늘 아침 열어 본 블로그에서 사진가 이상엽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만 죽은 것은 아니다. 개도 죽고, 물고기도 죽고, 농작물도 죽어간다. 포탄 몇발에 이러할진데..., 3일만 참자고? 전쟁 개시 15분만에 수만발의 포탄이 떨어진다.
전쟁을 부르짖는 저 추한 노인들을 보라. 저들은 이미 거대한 전쟁을 벌여 놓고도 반성은 커녕 다시 전쟁하자고 한다. 이제 다 잊은 줄 알지만 역사는 기억한다. 공공연하게 북진 통일하자고 한 것은 누구였는가?
또 전쟁이 마치 인류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인냥 고상한 말로 치장하는 노회한 지식인들을 보라. 책상 앞 정책과 이론이 아니라, 그들 모두 가족을 앞에 내놓고 전쟁하자고 주장해 보라해라.
전을 주장하고 우리안의 적을 색출하자는 저들이야 말로 비겁한 인간들이다. 아니 인간이길 포기한 짐승들일 뿐이다. 저들은 공공의 적이다.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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