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21

노트 2011. 2. 7. 13:24

내 주변의 사물들을 깊이 들여다보고 상상의 힘을 덧붙여 글을 써보겠노라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첫 사물로 자전거를 염두에 두었었다. 오래 전 일이었고 생각으로만 그친 일이었다. 옛 수첩을 뒤적이다 장도리, 대패, 가방, 신발, 접시, 가위....... 그때 생각했던 목록들을 발견했다. 마음이 동하여 아홉 사람이 쓴 자전거에 대한 책을 빌렸다. 다 읽고 책을 가방에 넣는데 한 문장이 퍼뜩 지나갔다. “너는 자전거를 타지 않는다.”
생각했다. 내가 직접 만지고 겪고 사용하며 교감하는 사물에 대해 말하는 것과 사물을 살피고 관찰하고 연상해 말하는 것과의 차이와 접점.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다. 천착의 결과에 따라 지금 내가 생각하고 쓰고 그리는 행위와 계획들이 가능할 수도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09)

태어난 날이다. 45년째 살아가고 있다. 누구에게는 어마어마한 나이일 테고 누구에게는 아직 비린 나이겠지. 털 나고도 꽤 오래 살았는데 삶이 참 뜨뜨미지근하다. 요즘 앞날을 내다보며 울고 웃는다. 살아오는 동안, 내 앞날에 대해 상상하며 요즘처럼 이렇게 설렜던 적이 없었다. 이렇게 다이내믹했던 때도. 잠을 설치고 때로 소스라치게 놀라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끝없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것만 같다. 밝고도 어둡고 불안하고도 느긋하다. 그 양극을 바삐 오고가다 보면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다. 지금 나는 칼 끝에 서 있다는 것.(07)

옥상에 올라 담배를 피운다. 불암산이 눈앞이다. 문득 생각한다. 사는 일이라는 게 쓸쓸하고도 귀하고 세밀하면서도 무심하고 끈끈하면서도 차갑다. 나는 어디에 이끌리고 있는가.(03)

집의 불을 끄니 온통 칠흑 같은 어둠이다. 더듬더듬 마당으로 나가 하늘을 본다. 앞산의 잔설도 뒷산의 낙엽송도 이어주는 길도 보이지 않고 별들만 빛난다. 별을 보고 있자니 문득 무서워진다. 나를 노려보는 것 같다. 곧이어 툭 - 귀신의 형상을 하고 내 눈 앞에 나타날 것 같다. 얼른 몸을 챙겨 집으로 들어선다. 이 다정한 원소리에서도 편치 못하다니.(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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