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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2011. 2. 14. 10:45

버스에서 내려 마을을 걷는다. 소림사 앞 버드나무에 까치 한 쌍이 집을 짓고 있다. 날아가 마른 가지를 물어오고 쌓고 경계하기를 반복한다. 대대손손 더하지도 빼지도 않은 채 몸으로 이어져 온, 날개와 부리와 나뭇가지만으로 짓는 본능의 집. 필요에 따라 언제든 버릴 수 있는 집.
지금도 꿈꾼다. 어디에든 틀고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집. 점점 더 규격화되어 가고 있는 내 생에서 과연 가능한 꿈일까? (16)

한 겨울, 칼 끝에 선 듯 조마조마하게 살고 있어 염두에 둘 겨를도 없었는데 내심 봄을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꿈에 딱딱하고 검은 땅을 뚫고 올라온 복수초가 노란 꽃을 피웠다. (14)

느티나무 빈 가지들이 아담하게 하늘로 뻗어 있는 양지. 햇볕을 쬐다 세상에 꽉 차 있는 부드러운 공기를 휘휘 저으며 걷는다. 낮술에 나른하다. 이렇게 걷다 세상에서 사라져도 좋겠다 싶을 만큼 한 없이 나른하다. 허나 이 세상 사람이니, 생각한다. 때때로 이 나른함에 젖으려면 쉼 없이 힘쓰고 애쓰며 살아야 하리라. 가난한 자의 숙명이어서 서글프기도 하지만 무위도 치열에서 나오고 허무도 열심에서 비롯되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옥천의 허름한 술집. 친구는 국수가 죽여준다고 말한다. 자리에 앉으니 앞 벽에 커다란 글씨로 ‘부지런한 꿀벌은 슬퍼할 시간이 없다’고 쓰여 있다. 세상에, 슬퍼할 시간이 없다니. 꿀벌은 어쩔지 몰라도 저 꿀벌처럼 사는 건 불행한 일이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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