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31

노트 2011. 3. 3. 09:43

친구 기역이 말한다. 삼 년, 갈등과 혼돈을 미루고 하나에 절절하게 몰입해봅시다. 삼 년 후, 그 삼 년을 발판으로 삶을 이어가도 좋고, 혹은 그 몰입이 헛된 것이라 여기고 삶의 틀을 완전히 바꾸기 위해 그 삼 년을 접는다하더라도 축제처럼 웃고 떠들며 즐겁게 홀홀 훌훌, 태워버릴 수 있도록.(07)

버스에서 내려 작업실에 들기 전에 마을을 산책한다. 일주일 전이려나? 버드나무에 날개와 부리와 나뭇가지만으로 집을 짓기 시작하는 까치 한 쌍을 가만히 쳐다보며 생각했었다. 어디에든 짓고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집에 갇히지 않는 집.
점점 규격화되어가는, 이 사회의 일반적인 시스템 그 변두리에 끼어들어 빈곤하나마 안정을 취해야 하지 않을까 조바심을 내고 있는 내게 그런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집이 과연 가능한 꿈일까? 너는 말할지도 모르겠다. 모 아니면 도지요. 사이에 끼어 양 편을 기웃거리고 발을 담갔다 빼는 그런 태도로는 나아갈 수 없으며 꿈도 현실도 그저 공상일 뿐. 분명한 태도가 필요하고 그에 따른 일상에서의 실천이 있어야지요. 그게 지혜랍니다. 당신이 말하는 그 ‘집’이 전혀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이 세상 살아가는 것 자체가 현실 아니겠어요? 아무리 많은 번뇌와 갈등, 생각이 있더라도 같은 틀 속에서 맴맴 돌면 그 틀에 갇히는 법. ‘틀’을 바꾸어야 하지요.
버드나무를 올려보니 녀석들이 집을 다 지은 모양이다. 참 엉성하고 졸拙하다. 허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겠지. 축 쳐져서 바람을 타는 가느다란 버드나무 가지가 얼핏 채도가 낮은 연두로 보인다. 착각일까 싶어 다가가 가지 끝을 보지만 알다가도 모르겠다. 까치는 알고 있겠지. 몸으로 느낄 것이다. 버드나무가 축축해지는 것을. 어느새 삼월이다.(05)

티브이에서 지리산 자락에서 덜 벌고 덜 쓰는, 자발적으로 가난한 이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세상과의 끈을 놓지 않고 때로는 홀로 때로는 두루두루 어울려 삶을 엮어가고 있다. 주요 등장인물 중 둘이 미혼이다.
태홍 : 당신이 저렇게 살았어야 하는데.......
나 : 아마도 더 들어가거나 집을 갖지 않고 돌아다녔을 거야.
태홍 : 진정 자유로운 영혼이로세. 자유로운 영혼들은 결혼을 하지 말아야 해. 더구나 심성이 연약한 사람들은 더욱더. 규격화된 삶과 책임감으로 방황하잖아요. 그들도 힘들고 주변인들도 버겁고. 가끔 당신에게 미안해요. 왜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해서 저이를 묶고 있나 싶어서.
나 : 자발적 가난, 자유의지에 의한 낙오, 자유로운 방랑...... 가끔 꿈꾸기도 하지. 하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꿈이지 갈등하거나 방황하게 하는 그런 미혹은 아니야. 지금 우리가 내 삶인 걸. ‘우리’는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하는 책임감이 아니라 서로 풍부해져야 하는 인연인 거지. 그 인연을 내려놓는 그런 꿈을 꿀 생각은 없어.
태홍 : 오! 정말? 그래요. 우리, 얼씨구 지화자, 꿈꾸며 잘 살아보세.(04)

빅터 파파넥의 [인간을 위한 디자인]을 읽는다. 이런 글이 인용되어 있다.
지리적 조건과 역사적 상황이 뒷받침된, 운이 좋은 국가들은 오늘날 더욱 황폐해진 정신과 더 허약해진 도덕적 근본을 드러내고 있다.
그들의 번영을 나타내는 모든 외양적 표시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국가들을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렇게 부유한 나라들은 이상의 결핍으로 괴로워하고 있지만 궁핍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상이란 삶에서 으뜸이 되는 필수품이다. 빵은 충분하되 이상이 결핍된 곳에서 빵은 이상의 대체물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빵이 부족한 곳에서 이상은 곧 빵이다.(예브게니 예브투셴코,[조숙한 자서전])
사실, ‘이상’이라는 말보다 ‘빵’이라는 말에, 그보다 ‘궁핍’이란 말에 마음이 끌려 기록해둔다.(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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