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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2011. 3. 21. 11:14

교양은 매너와 같아서 자기방어와 자화자찬이 섞여 있다. 규격화되어 격식에는 어울리지만 자유롭지 못하다. 교양만 있는 이를 보는 건 껍질만 더듬는 것 같아서 곤혹스럽다.(29)

본래의 내가 존재한다면, 나는 어떻게 내가 될 수 있는가? 니체가 정신적으로 사망하기 직전까지 내려놓지 않았던 질문이란다. 어떻게 사람은 존재하는 바의 자기가 되는가? (29)

1930년 일본 나가사키현 출생 / 1960년 제일모직노동조합 결성 주도 결성준비위원 감찰위원장 역임. 파업주도 후 해고 / 1968년 세칭 남조선해방전략당 조작사건으로 구속 징역3년 집행유예5년 선고 / 1974년 세칭 인민혁명당재건단체 조작사건으로 구속 / 1975년 비상고등군법회의를 거쳐 대법원에서 무기징역 확정 / 1995년 민족자주평화통일 대구경북회의 부의장 / 1996년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사건으로 구속, 집행유예로 석방 / 2010년 7월 12일 대장암 투병 중 별세.
라경일 선생의 초상화를 그렸다. 의뢰인이 보내준 자료는 간단한 약력과 달랑 사진 한 장. 이 사진을 똑같이 그린다고 해서 선생을 표현할 수 있으랴. 그의 얼굴을 더 보려 네이버를 뒤져보았으나 역시 이미지 한 컷. 쓰레기 같은 정보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넘쳐나는 세상에서 그의 파란만장한 삶에 대한 예의는 참으로 미미하다. (28)

네가 나고 자란 마을의 뒷산, 불암산 자락을 걷는다. 네가 동무들과 어울려 놀았다는 거북바위에 올라 멀리 본다. 당고개역으로 들고 나는 전철이 슬며시, 뱀처럼 움직일 뿐 세상은 고요하다. 숲길은 더욱 그러해서 내심 조용히 발을 딛는다. 여기에도 별꽃이 피었으려나, 나섰는데 뜻하지 않게 유려한 가지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조팝꽃 망울을 본다. 곧 톡톡 터져 하얗고 가지런한 꽃들을 피울 게다. 흰구름처럼 도톰한 눈꽃처럼 흐드러질 테고 벌들은 환장할 것이다.
모든 인생이 저 망울들처럼 만개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겠지. 모든 인생이 꽃을 피워 벌들을 불러 모으지는 않겠지. 한 시절 활짝 제 몸을 펴서 꿀을 나누어주는 것도 참 다행이겠구나. 어느덧 마흔 개의 나이테를 갖게 된 너, 아직 만개한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러니 너는 아직 저 연두빛 망울이다. 지금이 꼭 봄은 아니어도 좋은.(26)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실반지에 만족하세요? 5캐럿 다이아가 부럽지는 않으세요?] 강남역쯤을 지나가려니 오늘도 어김없이 버스에서 나오는 성형외과 광고. 얼굴을 고쳐 팔자 피고 인생역전하라는 이야기. 그래, 정량화할 수 없는 사랑이 무슨 대수겠냐. 5캐럿이면 얼마나 하려나?(25)

니체가 여행자를 네 등급으로 나누었단다. 여행자로 보이기를 바랄 뿐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눈먼 여행자가 가장 아래이고, 다음은 스스로 세상을 관찰하는 여행자, 그 다음은 관찰하면서 무엇인가를 체험하는 여행자, 최고 등급은 관찰하며 체험한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삶에 동화시키는 여행자라고.
어릴 적, 여행에서 돌아오면 여행을 하며 보고 느끼고 깨닫고 다짐한 것들을 내 일상의 삶에 동화시키고 접목시키는 데 늘 실패했고 그것을 안타까워했었다. 모르는 바 아니었으나 그 이유를 새삼 알겠다. 번민과 사색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건'관조'라는 프리즘을 통해 정리되었을 뿐, 내 몸으로 체험하지 않았다는 것.
지금은 그저 여행은 여행일 뿐이라 여기며 가볍게 다닌다. '스스로 세상을 관찰하는 여행자'이고 그것에 불만 없다. 문제는 삶을 하나의 긴 여정이라고 보았을 때에도 관찰자라는 것. '관찰'만으로는 내 삶을 영위할 수 없고 나에게 갈 수 없다. 내 길을 걸을 수 없다. 나와도 누군가와도 함께 가지 못한다. 내 몸으로 부딪힌 체험을 내 몸이 기억해야 세상에 대응할 수 있는 힌트를 얻을 수....... 말 뿐인 말, 더 말해 무엇하랴! 삶 같은 여행을 하고 싶다.(24)

칼국수 한 그릇 뚝딱 해치우고 오랜만에 마을을 걷는다. 멀리 버드나무 가지가 어린 연둣빛으로 흔들거리며, 봄 봄 정녕 봄이로구나, 바람에 장단을 맞추고 있다. 소림사 담장 역할을 하는 명자나무에 성냥알 만한 빨간 봉오리가 잔뜩 달려 있고 건너 밭에는 비비추 싹이 어느새 손가락만큼 올라와 있다. 작디작은 별꽃도 흰 꽃을 피웠다. 산수유나무 가지 여기저기 노란 꽃봉오리가 웅크리고 있다. 그 속에서 긴장과 여유가, 팽팽함과 느슨함이, 발랄과 고요가 서로 다투지 않으며 수다를 떨고 있는 듯하다. 산수유꽃은 만개보다 이런 봉오리가 더 단아하고 유려하다. 모두 그런 시간이다. 만화방창하기 전 킥킥거리며 웅크리고 있는 시간. 어쩌면 그래서 더 풍요로운 시간. (22)

꿈 이야기. 밝은 흙색 말을 타고 달린다. 갈기는 짧으나 부드럽고 다리는 길다. 근육은 잘고 섬세하며 튼튼하다. 말은 근사하지만 말 위에 탄 나는 불행하게도 질주를 즐기는 게 아니라 쫓거나 쫓기는 듯, 또는 목적지를 찾지 못해 배회하는 듯 마음이 바쁘고 불안하다. 따그닥 따그닥 달리는 길은 노란색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다. 어느 지방 어느 소도시의 어느 변두리 쯤. 노란 길을 되풀이하며 빙빙 돈다. 멋진 말에게 미안해 한다.
요즘 옥천과 양평을 자주 오고 간 때문인가? 서울에 눌러 살아야 할 지 떠나야 할 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오락가락 하는 탓인가? 뭐, 개꿈에 불과하지만 노란 길을 달리는 말의 세밀한 근육과 그 움직임이 떠올라 내심 설렌다.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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