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42

노트 2011. 4. 12. 15:05

공교육 체제에서 여러 가지 해악이 발생한다. 첫째, 모든 공공기관은 영속성 개념을 간직한다.(.......) 공교육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편견을 지지하는 데 에너지를 소진해왔다. 공교육이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은 모든 명제를 시험대에 올리는 용기가 아니라 과거에 확립된 믿음을 변호하는 기술이다. 별 볼일 없는 주일학교에서도 가장 열심히 가르치는 내용은 영국 국교에 대한 맹신 아니면 멋진 외투를 입은 사람에게는 인사를 해야 한다는 것 따위이다.(.......)
셋째, 공교육 프로젝트는 중앙정부와의 너무도 분명한 결탁 관계 때문에 항상 방해를 받는다. 정부는 영향력을 강화하고 제도를 영속화하기 위해 공교육을 이용할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특정 교육 체제를 선전하는 사람들의 시각은 정치권의 시각과 일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윌리엄 고드윈(20)

회의를 끝내고 밥을 먹으러 가다 선배를 만난다. 나는 악수를 하고 친구는 포옹을 한다. 잠시 안부를 묻고 근황을 주고받은 후 헤어진다. 식당으로 들어서며 친구가 말한다. 저 선배, 막 씻고 나왔나봐. 좋은 냄새가 나네. 거의 향기 수준이야. 요즘 우리 남편한테서는 통 느껴보지 못한 그런 신선한 냄새. 기분 나쁘지 않은데? 하 하. 생각한다. 내 몸에서는 무슨 냄새가 날까? 적어도 구리진 말아야 할 터인데. 몸 몸 몸, 정갈해야해.(19)

미선, 효순 관련 전시에 참여하게 되었다. 10주년이 되는 다음해에 추모비를 세울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전시. 살아 있다면 지금 스물넷의 창창한 나이였을 그들을 1년에 한 번 쯤 생각해보았을까? 잊고 지냈다.
전시 이야기를 했더니 후배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거 엔엘 아니야? 답했다. 엔엘이든 피디든 무슨 상관이야. 다 지나간 유물인 그 분류에 얽매여서야 뭔 일이 되겠나. 요즘 나는, 뭐 이제 첫 걸음이라 서툴고 오리무중이고 첩첩산중이지만 아나키즘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려해. 억압과 강제가 제도화된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개인의 자유로운 삶에 초점을 맞추려하지. 미선과 효순도 반미 자주가 아니라 그들의 꺾어진 삶을 바라보는 데서 시작하려는 거야.(16)

한 친구는 원칙을 말하고 한 친구는 융통성을 말한다. 술김에 농을 섞어 융통성은 원칙에게 근본주의라 칭하고 원칙은 융통성에게 경계가 없다 비판한다. 그들을 알기에 원칙이 교조가 아니고 융통성이 기회주의가 아니라는 것 또한 잘 알지만 원칙에 동의하며 말을 덧붙이려다 입을 다물고 생각한다. 알지도 못하고 내게 있지도 않은 원칙을 미사여구를 인용해 떠벌인들 거짓에 불과하지. 어쨌거나, 혹 꼰대가 된다 하더라도, 훗날 근본을 죽여 근본을 넘어선다 하더라도 우선 두려워말고 근본에 더 다가가야 하지 않을까?(15)

양재천 길을 한 사람이 지나간다. 유선형 헬멧에 푸른빛이 도는 선글라스를 썼다. 검은 장갑을 끼고 옆구리에 회색 줄무늬가 있는 검고 유려하며 세련된 상하의를 입었다. 몸짓도 우아하다. 분명 그가 다리를 움직여 자전거를 나아가게 하는데 위에 올라앉은 그가 마치 자전거의 치장 같고 액세서리 같다.(15)

우리는 피라미드 구조 대신에 네트워크를 구성해야 한다. 모든 권위적 기관은 피라미드 구조를 갖는다. 국가, 공기업과 사기업, 군대, 경찰, 교회, 대학, 병원, 이것들은 피라미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위에는 결정권을 갖고 있는 소집단이 있고 아래에는 소집단의 결정권을 정당화해주는 무수한 사람들이 있다. 아나키즘은 피라미드를 구성하는 단계의 이름 바꾸기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우두머리를 바꾸자고 하는 것도 아니다. 아나키즘이 원하는 것은‘우리’가 피라미드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아나키즘은 스스로 결정하고 자신의 운명을 조정하는 개인과 집단의 확장된 네트워크를 지향한다. - 콜린 워드의 [아나키즘, 대안의 상상력] 중에서(13)

일 때문에 친구에게 전화를 한다. 실크 인쇄 잘 하는 곳 알고 있나? 가만 있거라....... 전화번호 적어 봐.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디자인, 실크판 제작하고 있는 회산데 나름 괜찮아. 고맙네. 소주 한 잔 해야지? 지난 번 자네가 내 뒷모습 밑그림들 보고 해주려던 말 있잖아. 꼭 술 한 잔 곁들여 해야 한다며 미루었던 거. 그래야지. 벚꽃 흐드러지면 그때 하세. 전화를 끊기 전 친구가 덧붙인다. 헌데 자네, 작업실인가? 이 좋은 날 작업실에 있다니. 난 일 작파하고 지금 한강에 나와 있다네. 그만이로구만. 어여 문 열고 나가 보게.(12)

아이가 노래를 부른다. 나비야 나비야 이이 나아오너아. 노안나비 흰나비 춤을 추며 오너아. 봄바암에 꽃잎도 방긋방긋 웃으며 참새들 짹짹짹 노애하며 춤춘다. 그리고는 손뼉을 친다. 아이의 노래를 듣고 있자니 불쑥 불쑥 피어나는 봄꽃에 두렵기까지 했던 마음이 누그러든다. 눈 치켜뜨고 꼬나본다고 꽃이 피지 않는 것도 아니고, 끙끙거리다 보내버리면 이 한 시절 어디 또 다시 오겠는가. 눈물로 봄을 새우는 이들도 있을 터인데 마음 아파하고 투덜거릴 수 있는 것 또한 복된 것이니 늦었지만 마중이라도 나가 보자. 혹시 아는가? 꽃이, 봄이 내 무지를 일깨워줄지. 조근 조근 눈물에 대해 이야기해줄지.(11)



'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051  (4) 2011.05.05
11043  (2) 2011.04.21
11041  (2) 2011.04.04
11033  (2) 2011.03.21
11032  (0) 2011.0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