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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2011. 5. 5. 00:49

꿈 이야기. 요리사가 투박한 칼로 연어 회를 뜬다. 연어마다 살을 저미는 법이 다르다. 연유를 물으니 이렇게 말한다. “제 마음이나 기술과는 상관없는 것입니다. 연어가 저마다 원하는 바에 따라 각기 다른 칼놀림으로 뜨는 것이지요. 한 마리 한 마리, 모두 다 다르게 스스로에게 맞는, 자신들의 살이 분해되는 법을 요구합니다.” 웃는 연어도 있고 무심한 연어도 있다. 대개 죽음을 초월한 듯 하다. 요리사는 말을 잇는다. “모두 맛도 다릅니다.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가 다르니 당연 그럴 테지요.”(09)

사온과 집 주변을 걸었다. 녀석은 한참 동안 개울에 돌멩이 던지기 삼매경이더니 풀밭 앞에 털썩 주저앉아 애기똥풀 꽃줄기를 꺾었다. 노란 즙이 손바닥에 묻었다. 녀석은 말했다. “어! 이게 뭐야?” 애기똥풀에 관해 설명해주었더니 혼자 애기똥풀 애기똥풀, 되뇌었다.
저녁, 태홍이 사온 손에 묻은 노란 즙을 보고 이게 뭐냐고 묻는다. 사온 왈 “아기똥풀”(07)

작업실도 양평 근처 옥천면 용천리로 옮겼다. 집과는 칠 킬로미터 떨어져 있고 차로 대략 십 분이 소요된다. 하루 세 시간 걸리던 출퇴근길이 이십 분으로 줄어들었다. 자전거로 오고 갈 수 있는 거리지만 자동차들이 빨리 달리는 국도여서 야밤 자출이 불안해 일단 보류하고 있다. 사실 자전거도 없다.
집도 작업실도 몸도 마음도 어수선하다. 재빨리 정리하고 우선 유월 초에 출품해야 할 작업에 매진해야지.(05)

거실 한 가득 짐을 쌓아 놓고 방 하나 겨우 치우고는 눕는다. 불을 끄면 칠흑이려니 했는데 멀찌가니 외등 하나 창문에 걸려 있어 그나마 포근하다. 몸도 마음도 피곤하지만 태홍도 나도 말똥말똥 하다 뒤척이다, 잠 못 이루는 밤이다. 소쩍새가 운다. 개울 소리가 간신히 들린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라고 연애하고 짝짓고 낳았다. 서울을 등진 건 처음이니 새로운 삶이다. 태홍이 즐겁기를, 사온이 잘 자라기를, 나는 조용히 작업에 몰두하기를, 다시 서울로 가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기를 빈다.(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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