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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2011. 6. 2. 10:39

하루에도 몇 번 씩, 온이는 홍천 이야기를 한다. 하여 물었다. 홍천 가고 싶어? 응. 시원하게 대답한다. 다시 물었다. 홍천에는 왜 가고 싶은데? 온이 왈 "홍천에 가면 할머니가 사랑해주어서 기분이 좋아." 그래, 오늘 저녁에 가자 했더니  신이나 거실을 뛰어다닌다. (04)

효순 미선 관련 전시에 낼 그림을 그리며 새벽을 보내고 있다. 그녀들이 살았다면 지금 스물 넷. 스물 넷 쯤 되는 젊은 여자 둘의 뒷모습을 그리는 중이었다. 전시가 낼 모레인데 구상에 날을 보내다 부랴부랴 정신없이 그리고 있었다. 한 여자의 머리카락을 그리고 있는데 순간,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것 같아 깜짝 놀랐고 섬뜩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미안하다. 너희들을 잊고 그저 그림을 그럴 듯하게 그리려 깨작깨작 애만 쓰고 있구나. 지금 나는.(03)

 선배 전시가 있어 이사 후 처음으로 서울 나들이를 했다. 서울과 용인에서 미술학원을 하기도 했고 이천에서 개를 키워 팔기도 했던, 지금은 강서구 어느 정거장 앞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이다. 삶이 고단하고 참 착한 이다. 그래서 그를 좋아한다. 하여 내 코가 석자인데도 왕복 다섯 시간이 넘는 길을 다녀왔다. 가게에서 복권도 팔고 있는 그는 복권 수천 장을 이어 붙인 거대한 화면에 인두로 진경산수를 그려냈다. 가까이 보면 어지러운 이 세상처럼 두서없이 난삽하고 누추하고 거친 필치인데 멀리서 보면 한 폭의 풍경이 된다. 복권에 삶을 기대는 이들의 꿈을 불로 지져 만들어낸 이 땅의 산수라.......(02)

오래 전 일기에 이렇게 썼었다. 봄은 어제, 이제 막 혁명에 가담한 처녀처럼 파릇하고도 씩씩하게, 덜덜 떨며 내게 왔다. 귀에 뜨뜻한 숨소리를 불어넣으며 애무하기도 했고 살을 슬슬 쓰다듬기도 했다. 간지럽고도 따끔거려 흥미로웠고 몸이 달아올라 미열에 시달리곤 했다. 그렇게 왔으면서도 봄은 오늘, 통정通情 없이 홀로 간다. 단 이틀의 계절. 붙잡을 수 없어 당황스럽다. 올 봄도 다르지 않다. 아니, 매해 봄마다 그러했던가?(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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