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11

노트 2012. 1. 17. 11:51

음식점에서 아이가 숟가락으로 딱 따다 닥 따다닥, 상을 치며 노래를 한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있는 곳이니 노래는 조금 작게 하고 상은 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니 “네” 건성으로 대답한다. 하여 진정한 마음으로 대답해야지, 했더니 "나 지금 마음이 콩밭에 가 있어요." 말한다. 하 하 웃다 생각한다. 그래, 내 마음도 늘 콩밭에 가 있지. 훗날, 마음만 오고가던 콩밭에서 몸도 함께 살려면 내 마음, 지금 여기 있어야 하지.(07)

산굼부리. 진한 갈색의 억새들 사이로 난 길은 하얗고 바람은 거세다. 눈보라가 몰아치는데도 아이는 이리 저리 뛰어다디고 눈을 뭉쳐 던지며 깔깔거린다.
내려오는 길에 아이를 업은 태홍이 말한다. "아이를 업고 눈길을 터벅터벅 걸어 내려오자니 내가 노새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월령리로 돌아가는 길에 해수사우나에 들른다. 묵고 있는 집 보일러가 작동되지 않아 제대로 씻지 못했던 몸을 따뜻한 물에 담그고 커다란 창 너머 바다를 본다. 겹겹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희고 높은 파도를 한참 바라보다 문득, 저 수평선 끝에서 수십 미터가 되는 거대한 파도가 벌떡 일어서 이 섬으로 달려오고 있는 상상을 한다. 정말 그렇다면, 곧 벌거벗은 채로 바닷물에 잠겨 사라질 나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04)

절물휴양림에 도착하니 듬성듬성 내리던 눈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쌓여있던 눈 위로 눈이 내리고 바람도 만만치 않은 저 숲길을 아이와 함께 걸을 수 있을까? 설왕설래하다 차를 돌려 도착한 김영갑갤러리. 책에 인쇄된 사진에는 없던 바람의 떨림과 섬세한 햇빛이 보인다. 저 오름들을 얼마나 많이 그리고 힘겹게 오르내렸을까? 사진보다는 그의 의심 없는 몰입을 느낀다.(03)

아침, 월령리 바닷가를 걷는다. 바람이 거세다. 바다는 검푸르고 높은 파도는 유난히 하얗다. 생각 없이 걷다, 밥을 지어야겠구나, 집으로 돌아서 가는데 나무로 만든 조랑말 모양의 간세가 이곳이 올레 14코스임을 알려준다. 나는 그저 길을 걸었는데 올레길에 있었던 게로구나. 나도, 제주도도 올레라는 강력한 틀에 갇힌 느낌이다.(02)

비행기가 드넓게 펼쳐진 구름 위를 날고 있다. 희고 몽실해 부드러운 듯하나, 고저와 명암이 분명하여 까칠해 보이기도 하는, 끝없는 설경 같다. 문득 생각한다. 나를 믿기로 하자. 나침반의 바늘 끝처럼 늘 떨고 있는 나를. 구름을 보다 왜 이런 생각이 드는지 알 수 없지만 생전 처음이다. 나를 믿자는 다짐.(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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