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63

노트 2012. 7. 2. 11:07

비가 내린다. 빗소리가 참 좋다. 핑계 삼아 오랜만에 나와 술을 마신다. 주거니 받거니, 분위기가 꼬리꼬리 멜랑꼬리하다. 헌데 나와 나의 간극이 교묘해 서먹서먹하다. 짝사랑하던 이와 우연히 마주한 느낌이랄까? 나는 무심한데 나는 설레 입을 열지 못한다. 오래 사랑해서 지겹도록 익숙한 너, 나이지만 한참만에 만난 탓인가? 꽤 낯설다. 나와 너의 교집합을 만들기가 참 쉽지 않아 빗소리보다 빠르게 취해간다. (29)

고추밭에 웃거름을 주고 푸르른 벚나무 아래에서 막걸리 한 잔 한다. 집 유리창을 가리키며 아버지께서 말씀하신다. “저 유리창에 가끔 새들이 날아와 부딪혀 죽곤 해. 밖에서 보면 집안은 잘 안 보이고 산과 나무, 하늘이 비춰져서 그런 것 같은데, 엊그제도 한 녀석이 날아와 부딪치더라구. 집안에서 그 소리를 들었는데 소리가 크지 않아 죽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싶어 나가 봤지. 부딪치는 소리가 크면 대개 죽거든. 아니나 다를까 조그만 새가 땅에 떨어져 있더구만. 죽지는 않은 것 같은데 미동도 없었지. 네 엄마가 따라 나와 그 새를 두 손으로 가만히 들어 한참 가슴에 품고 있었어. 그 모습을 지켜보다 문득 생각나더군. 물을 좀 먹여주면 정신을 차리지 않을까 하는. 물을 떠와 부리를 열고 먹여주었지. 그랬더니 눈을 뜨더라고. 죽지는 않았구나 안도한 네 엄마가 정성껏 계속 품고 있었어. 잠시 후 눈도 감고 부리도 닫더라고. 그래서 또 물을 주었더니 눈을 뜨는 거야. 네 엄마가 새를 보며 ‘정신 차려라, 아가야. 정신 차려랴, 아가야.’ 주문을 외듯 말했어. 그렇게 네 엄마는 새를 품고 있었지. 시간이 지나자 새가 몸을 꿈틀거리는 거야. 네 엄마가 여기 이 굵은 벚나무 가지 위에 올려 주었어. 한참 가만히 엎드려 있듯이 앉아 있더니 포르르 그 옆 가지로 옮겨가는 거야. 또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고. 그때 친구들인지 식구들인지 새들 몇 마리가 날아와 먼 가지에 앉아서는 그 녀석을 바라보며 울더라고. 네 엄마와 나는 조용히 그 녀석을 지켜보았지.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 새가 날개 짓을 하며 날아가더군. 그 날개 짓이 참 흐뭇했어. 네 엄마의 온기와 때에 맞춘 물 몇 모금이 녀석을 살린 것 같아 기뻤지.” 이야기를 들으며 엄마 품에 가만히 안겨 있는 나를 상상한다. 참 평온할 것 같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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