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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2012. 12. 21. 10:11

개표 방송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박근혜의 당선 유력이 점쳐지자 태홍이 벌떡 일어난다. "하~ 박근혜라니! 더욱 분발해야지. 잘 살아야해. 저 여자 세상에서 찌질하게 살기는 싫어! 근사해져야 해." 문재인의 득표율이 많은 지역이 나올 때마다 "엄마, 문재인 아저씨가 이기고 있어요. 다행이다."라 말하던 아이를 데리고 잠자리에 든다. 혼자 앉아 보고 있으려니 뭔 청승인가 싶어 주섬주섬 술상을 정리한다. 에고! 우리 순자언니는 어찌할꼬.(19)

작업실 밖으로 나와 풍경을 본다. 작업실 마당에는 늦게 심어 자라지 못해 그대로 둔 배추 몇 포기가 눈 사이로 어두운 초록을 내밀고 있다. 멀리 산을 보니 다 녹지 않은 눈이, 마치 산의 뼈대인 것 같은 골골 능선을 근사하게 보여주고 있다. 나란히 서서 담배를 빨던 친구가 쉰을 이야기한다.
"우리, 두 해 더 살면 쉰일세 그려. 상상해보지도 않았던 오십이었는데 어느덧 와버렸어." "그러게. 어릴 적 오십은 할아버지였는데 지금 오십은 여전히 어리네." "그래. 아직 다 자라지 못했지." "뭐, 죽을 때까지 자라는 거고, 자라야 하는 거니까." "그래서 말인데 지금까지 해 오던 익숙한 것이든, 새로 시작하는 낯선 것이든 쉰에 삶을 다시 새롭게 시작해도 될 거란 생각이 들더라구. 남은 2년, 쉰의 시작을 준비하는데 쓰려고 해." '시작이라...... 2년이라......" "뭘 고민하는 척 하시나. 당신 처지도 나와 다를 바 없구만. 더구나 새로 시작한 것도 있고 시작하려는 것도 있고." "그래. 그래야지. 시작해야지. 준비해야지. 2년 제대로 준비해서 20년 동안 노동력 솔찬히 팔아먹고 그걸로 그 후 30년 동안 먹고 살아야지. 크 크 크" "하 하 - 욕심도 많으셔라." 감나무에서 밥을 파먹던 까치가 퍼드득- 날아간다. 그 소리가 무겁다.(17)

석가모니의 일생을 다룬 책을 읽고 있다. 그도 스승에게 머물지 않고 몇 번이나 그들을 넘어서 갔다. 내 그릇이 작아 임제의 화두처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 넘어서지는 못하겠지만 그 안에 머물지는 않겠다.(16)

이응이 말한다. "좌파가 왜 이리 고귀하고 귀하지? 개망초처럼 뽀리뱅이처럼 민들레처럼 질경이처럼 흔하디흔해야 하는데. 소중하기는 하나 귀해서는 안 되는데. 스스로 나고 자라서 퍼지고 퍼져 흔해야 하는데. 울타리 안에 반듯하게 심어져 보살핌을 받는 그런 귀한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되는데. 스스로 퍼지고 스스로 모여 수다를 떨어야 하는데."(14)

비가 온다. 나를 이곳으로 이끈 힘은 무엇일까? 오래전부터의 아픔 같은 것. 그리고 세상을 향한 상실....... 47년이 흘렀다. 나를 기다려준 이곳에서 나는 치유되고 있었다. 예술이 주는 환희. 삶의 고독 같은 것. 지루하고 치열한 나날이었다. 삶의 언저리에서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노르망디여! 나의 예술을 깨워 너의 뜨거운 가슴에 담아다오!-2012년 4월 노르망디에서
웹을 뒤지다 우연히 보게 된 친구의 글이다. 그가 고심해서 골랐을 단어와 말투, 감성의 지점이 나와 참 다르구나. 어쩌면 그래서 그는 '거기'에 있고 나는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글을 읽다보니 그와 내가 소원한 이유를 알겠다. '거기'와 '여기'의 먼 거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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