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42

노트 2013. 4. 25. 17:39

반주 한 잔 곁들인 점심을 먹고 아주 오랜만에 당구를 친다. 워낙 듬성듬성 쳐왔으나 구력이 30년이니 공이 오고 가는 대개의 길은 안다. 그런데도 점수는 늘 100 아래로 처져 맴돈다. 오늘도 다르지 않은데 큐볼이 목적구로 가지 않고 샛길로 빠지기 일쑤이니, 물론 물리고 만다. 그 까닭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정교함에 대한 고민의 부재이고 다른 하나는 정도를 피해 길 아닌 길을 가려하는 치기이다. 내 삶과도 다르지 않다. 당구야 일 년에 두어 번 치는 그저 놀이이지만 삶은 매일 매일 일 분 일 초 살아가는 것이어서 그 폭과 진동이 무척 다른데 어찌 이리 그 근본은 별반 다르지 않을까?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사는 일 전체도, 30분간의 당구도 모두 나에게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주를 통일적인 단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하려는 노력이 양자라는 초미시적 영역에서 연구되고 있지 않은가. 거시적이든 미시적이든 궁극적인 작동 원리는 하나일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18)

철학으로 불교를 기웃거리고 있다. 내 삶의 태도와 교집합을 이루는 부분들이 있어 어설프게 동의하고 위로도 받지만 목에 가시처럼 걸리는 지점이 있는데 바로 '윤회'다. 연옥이야 계도를 위한 단순한 장치라 무시한다 쳐도 윤회는 교묘하고 복합적이어서 부정하면서도 갸우뚱해왔는데 우주에 관한 책을 읽으며 윤회에 관한 생각들이 일면 정리가 되는 듯 하다. 윤회란 한 개인이 죽고 다시 태어나고 또 다시 태어나는 구조가 아니라 죽음으로 완전히 사라지면서 거름이 되어 새롭게 태어나는 생명에게 물질과 정신의 정보로 깃드는 그 순간이 아닐까 싶다. 별이 먼지와 티끌로부터 태어나 살다 명을 다하여 다시 먼지가 되고 그 잔해로부터 또 다른 별이 태어나는 그 순간처럼. 하나가 멸하지 않는데 어떻게 새로운 하나가 태어나겠는가. 윤회란 그런 이 세상의 평범한 일상의 이치가 아닐까?(16)

고추 심을 밭을 뒤집어엎는 동안 아이들은 까만 비닐봉지에 길게 실을 매달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바람을 담아 연을 날리고 있다. 아이들의 몸이 햇빛에 빛난다. 퇴비 냄새가 삽질하는 근육을 긴장시킨다. 200주 심을 밭을 다 파 엎고 벚나무 아래에서 아버지와 동생과 참으로 막걸리 한 잔 나눈다. 뒷산 기슭에 양지꽃이 노랗게 피고 개나리가 듬성듬성 꽃을 피웠을 뿐 벚과 목련은 아직 웅크리고 있다. 봄꽃놀이의 수다스러움이 다 지고 난 후 꽃을 피우는 홍천의 벚은 그래서 여유롭다. 고추 모종을 심는 5월 초가 되면 만개하리라.(13)

원시 경전인 『디가 니까야』에 있는 붓다의 우주에 관한 생각은 다음과 같다.“세계가 수축하는 여러 겁, 세계가 팽창하는 여러 겁, 세계가 수축하고 팽창하는 여러 겁을 기억한다. … 나는 과거를 아나니 세상은 수축하고 팽창했다. 나는 미래도 아나니 세상은 수축하고 팽창할 것이다.”… 붓다의 우주관은 무시이래로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는 진동우주를 뜻한다. 붓다의 이러한 우주관은 두 가지 이론에 근거한다. 첫째는 우주가 형성되어 머물다가 멸하여 없어진다는 성주괴공의 이치에 근거하며, 둘째는 팽창과 수축이라는 양극단을 벗어나는 방법은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는 중도에 근거하는 것이다.-『붓다의 세계와 불교우주관』, 이시우, 민족사, 2010, 41쪽(12)

워킹화를 구입해 신고 다니던 태홍이 불편하다며 묵혀두었던 운동화를 꺼내 화장실에 두었다. 워킹화가 불편했던 건 그의 바쁜 걸음이 ‘워킹’이 아니라 ‘생활’이기 때문이리라. 모두 잠든 후 신을 닦는다. 찌든 때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이 더럽고 낡은 신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쓰기 위해 꺼내던 그 순간의 마음을 읽는다.(11)


'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14032  (0) 2014.04.05
13043  (0) 2013.05.07
13033  (0) 2013.03.29
13032  (0) 2013.03.21
13011  (0) 2013.0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