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2

노트 2019. 6. 17. 21:47

19  페친이 말했다. “예수가 살아 있다면 아마 황교안의 귀싸대기를 새벽부터 저녁까지 때리고 30분 휴식 후 다음날 새벽까지 다시 때릴 것이다.”라고. 동영상으로 상상하니 짜릿하다. 오늘 황교안이 이랬단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의 경제에 기여한 바가 없다고. 동일 노동을 하더라도 외국인 노동자와 한국인 노동자 간에 임금을 차별해서 지급하도록 하겠다고. 때가 어느 때라고 이런 인종주의적 멘트를 날리시는지.

 

15  경계를 지나 홍천군에 들어서니 낮은 구름이 더 무겁고 어두워졌다. 조금 더 달려 며느리고개를 넘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박같은 비를 뚫고 원소리 운곡재에 도착했다. 기다리고 있던 형제들이 뛰어나와 동생은 나를 업고 누나는 우산을 씌워주었다. 오랜만에 당신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방과 거실에 쌓인 송화 가루를 구석구석 훔쳤고 낮에 솎아 놓았던 엇갈이배추로 겉절이를 담갔다. 밤새 내리기를 바랐던 비가 이내 그치고 뒤이어 노을이 졌다. 아버지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막걸리와 함께 지켜보았던, 그가 한 번도 같은 ‘나’였던 적 없었던 것처럼 태초 이래 한 순간도 같지 않은 매일 매일의 노을. 날이 저물자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동생이 유투와 핑크플로이드 위주로 선곡했고 신청곡을 받아 레녀드 스키녀드, 레드제플린, 심규선, 엘튼 죤, 비티에스, 빌리 엘리쉬, 브루스 스프링스틴, 심은경, 마르게타 이글로바, 잭슨 브라운, 엘리스 쿠퍼, 엘리엇 스미스 등을 더해 들으며 수다를 떨었다. 어느새 내일 모레 보름인 달이 밝게 떠올랐다. 음악과 수다 사이, 사이에서 자꾸 혼자 울컥했다. 그때마다 눈을 돌려 달빛을 튕겨내는 산딸나무의 하얀 꽃턱잎을 바라보며 진정시켰다. 그래도 나오려는 눈물은 꾹 꾹 눌러 삼켰다. 아버지 때문도 죽음 때문도 아니었다. 그보다 더 슬픈, 뭐랄까? 살아남아 있다는 게, 아니 살아가고 있다는 게 그냥 서럽고 슬펐다. 그 슬픔이 삶의 본질인 것처럼. 그렇게 남몰래 속이 무너졌는데 그게 짜릿하기도 했다. 아바도와 게르기예프 이야기가 나와 말러의 ‘교향곡3번 6악장’과 림스키_콜사코프의 ‘세헤라자데’를 들었고, 아버지가 취하면 듣곤 했던 차이콥스키의 ‘안단테 칸타빌레’를 끝으로 자리를 마무리하고 나니 자정이 훌쩍 넘었다.

 

12  엊그제 구리백화점에서 구입한 토퍼가 배달되었다. 아내가 잠자기 전에 토퍼를 두툼하게 깔고 덮을 차렵이불도 새로 꺼내 잠자리를 개비하자 리코더를 불고 있던 뛰어들어 뒹굴며 좋아했다.

온 _ 아이고, 푹신하다. 천국이 따로 없네. 천국이 따로 없어. 좋아. 좋아, 개좋아!

그러고는 리코더로 ‘오블라디 오블라다’를 기쁨의 나팔처럼 재빠르게 불다 말고 엄마에게 물었다.

온 _ 근데 엄마 이거 얼마야? 비싸?

원 _ 이거? 비싼 거야. 잠 좀 잘 자볼라고 엄마가 무리 좀 했지. 좋은 건 다 비싸잖아.

비싸다는 아내의 말에 아이가 비장한 어투로 말했다.

온 _ 이 더러운 자본주의 세상!

더러운 자본주의? 킥 킥 웃다 넌지시 물어보았다.

나 _ 아들, 자본주의가 뭔지 알아?

온 _ 알지. 그걸 왜 몰라? 우리 반 애들도 다 알아.

나 _ 자본주의가 뭔데?

온 _ 자본주의? 음....... 자본이 뭐겠어? 돈이잖아. 그러니까 자본주의는 돈이 주인인 거지.

나 _ 왜 더러운 자본주의야?

온 _ 뭘 하든 돈이 있어야만 되니까. 근데 난 돈이 없잖아. 그러니까 더럽지.

나 _ 그렇군. 그럼 이 자본주의 세상에서 어떻게 살면 좋을 것 같애?

온 _ 잘.

나 _ 잘?

온 _ 어. 잘.

그 사이 책을 읽기 시작해 건성으로 대답하는 아이에게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거냐고 물어보려다 입을 다물었다. 반백년을 살면서도 이 ‘더러운 자본주의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다가도 모른 채 떠밀리듯 흘러가고 있는 형편이니, 뭐 잘났다고 아이에게 묻겠는가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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