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2

노트 2020. 5. 1. 22:37

18  파먹던 냉장고가 홀랑해지자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읍내로 장보러 나선 오후. 혼자 남아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퉁 퉁 -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택밴가? 귀를 기울이니 곧이어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굴러가 문을 열었다. 덩치가 굵고 마스크를 쓴 남자가 군청에서 나왔다며 내 신분을 확인한 뒤 비닐봉투에 담긴 납작한 물건을 건넸다. 마스크 사러 나오시기 어려운 장애인분들에게 군에서 드리는 면마스큽니다. 사용 방법은 적혀 있으니까 읽어보시고 사용하시구요. 여기에 싸인 해 주시면 됩니다. 마스크를 받고 수령 확인 칸에 이름을 적었다.

비닐봉투를 열어보니 파란 면마스크와 필터 세 장, 간단한 사용설명서가 들어 있었다. [면마스크는 세탁한 후 말려서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필터의 매끄러운 면이 입 쪽을 향하도록 끼우십시오. 필터는 세척하지 말고 젖은 경우 말려서 사용하십시오. 군민 여러분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양평군]

얼마 후 아내와 아이가 낑낑거리며 장바구니를 들고 들어섰다. 면마스크를 보여주자 아내가 말했다. 아! 이거구나. ○○ 언니가 마스크 만드는 자원봉사 한다더니. 잘 만들었네. 한 번 써 보소. 양쪽 끈을 묶어 써보았다. 코를 적당히 덮으면 턱이 삐져나왔고, 턱에 맞추면 코에 간당간당 걸렸다. 젠장. 태어날 때 엄마만 힘들게 한 이 쓸모없이 큰 얼굴이라니. 그 모습을 보던 아내가 쿡 쿡 웃으며 말했다. 모자도 그렇고 안경도 그렇고 마스크까지. 당신은 참 쓰는 게 안 어울려. 내가 빨면서 써야겠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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