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3

노트 2020. 5. 1. 22:40

22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청명했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코딩 프로그램 삼매경인 아이를 꼬드겼다. 사온, 햇볕이 좋다. 산책 나가자. 아이는 잠시 망설이더니 말했다. 그럽시다. 까짓 거. 아내가 경사로를 깔아주어 오랜만에 산책을 나섰다. 킥보드를 탄 아이는 내 속도에 맞춰주며 천천히 골목을 빠져나와 큰길가 편의점으로 직진했다. 맑은 하늘에 따뜻한 햇볕, 시원한 바람이 근사했다. 길가 풀밭을 살펴보며 갔다. 냉이와 꽃다지가 흔하게 보였고 꽃마리와 제비꽃도 눈에 띄었다. 편의점에서 아이는 불닭볶음면과 홈런볼을, 나는 아내가 부탁한 맥주와 아이스크림을 샀다. 맥주 네 캔은 내 가방에 넣고 나머지는 아이가 킥보드 손잡이에 걸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가까워지자 이 짧은 외출이 못내 아쉬웠다. 아이에게 내 몫의 하드를 건네받고 혼자 마을 뒤편으로 갔다. 갈아엎은 논이 보이는 햇볕 따뜻한 곳에 멈춰 브레이크를 걸고 단호박비비빅을 꺼냈다. 여유롭고 맛있게 씹어 먹은 뒤 새로 난 길로 가는데 트랙터가 다가왔다. 길 구석으로 비켜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트랙터에 매달린 수레에서 거름 냄새가 진동했다. 새로 난 길로 접어들어 어슬렁거리며 굴러갔다. 도랑 건너 편 길로 경운기가 통통거리며 연이어 지나갔고, 두 사람이 재단 된 길고 긴 파이프 양쪽을 어깨에 메고 스렁 스렁 소리를 내며 끌고 갔다. 반려견과 산책하는 사람과 지팡이를 짚으며 걷는 노인이 내 옆을 지나가기도 했다. 백운봉이 떡하니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멈춰 서서 한참 햇빛을 받아들이다 집으로 돌아왔다.

 

28  아버지 돌아가시고 근 1년을 비워두었던 원소리 집을 처분했다. 엄마와 동생들과 술 한 잔 하며 마지막 밤을 보냈고, 아침부터 부지런히 나머지 짐을 싸 엄마와 동생들은 벽제로,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20년 간 오고 간 길로 돌아오는데 아이가 말했다. 아쉬워! 할머니 혼자라도 그냥 사시지 왜 이사를 가. 내 어린 시절 추억이 거기 다 있는데.

퇴직한 아버지는 생판 낯선 곳인 홍천 원소리 산골에 터를 잡고 집을 지었다. 엄마와 함께 300평 밭을 삽과 긁쟁이와 호미로 일구었다. 땅은 돌투성이였다. 고르고 또 골라내 몇 년이 지나서야 부들부들한 흙밭이 되었다. 황량했던 땅에서 배추와 무, 고추와 옥수수, 알타리무, 오이, 작약, 당귀, 도라지, 감자와 고구마, 호박, 참깨, 부추, 더덕, 땅콩과 강낭콩, 토마토, 수박, 각종 잎채소와 시금치, 홍당무, 파 등이 자랐다.

이사 와 심은 목련과 벚을 비롯해, 산딸, 불두화, 단풍, 사철과 철쭉과 영산홍, 쥐똥과 개나리, 모과, 대추, 살구와 앵두, 천도복숭아, 조팝 등의 나무들이 자라고 자라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마지막으로 집 주변을 둘러보던 아내가 말했다. 무엇보다 이 굵직해진 나무들을 두고 떠나는 게 제일 아깝고만.

작은 돌로 가지런하게 구획된 엄마의 꽃밭에는 근처에서 캐온 풀꽃들이 자리를 잡았는데 상사화와 복주머니란, 하늘매발톱, 앵초, 할미꽃, 무릇, 채송화, 꿀풀 등이 피고 졌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형제들이 내려와 밭일을 도왔다. 봄에는 고추와 옥수수, 여름에는 김장 배추와 무 등을 심기 위해 퇴비를 뿌리고 삽으로 땅을 뒤집어엎고 모종과 씨앗을 심었고, 늦가을에는 배추를 뽑아 김장을 담갔다. 자식들은 핏줄이라 그렇다 치고 남의 식구인 아내와 제수씨가 고생이 많았다.

원소리에 내려와 일을 할 때면 틈만 나면 아버지의 장화를 신고 주변의 산과 들을 산책했다. 내가 아는 풀꽃의 대부분을 원소리에서 만났다. 아무 생각이 없어 충만한 순간이었고, 다치고 난 뒤 가장 그리운 시간들 중 하나였다.

집의 새 주인을 만나 인사를 하고 열쇠를 건네주고 떠나기 전 올려다본 왕벚나무 가지마다 연두색 망울이 막 피기 시작하고 있었다. 벚나무 그늘에 담겨 엄마와 아버지, 누나와 동생들과 막걸리를 마시던 때가 가끔 그리울 것이다. 달 아래서 음악을 들으며 수다를 떨던 밤들이 생각날 것이다.

대개 티격태격 모드로 지냈지만 산골 외딴 집에서 아버지와 단둘이 20년을 살며 깔끔하게 가꿔 온 밭과 집을 두고 떠나는 엄마의 마음이 착잡할 것이다. 생이 다할 때까지 원소리의 시간들이 흐뭇하게 기억되기를 엄마의 안녕과 함께 빈다. 안녕, 원소리. 안녕, 시절들.

 

30  수개월 동안 손톱 반만 한 나방 두세 마리와 함께 살았다. 찾아보니 일명 쌀벌레나방이었다. 개체의 수명이 12일 정도라고 하니 나름 대를 이어 살고 있었던 것이다. 집안을 헤집고 날아다니지 않고 얌전히 벽에 붙어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아 간섭하지 않고 지냈는데, 오늘 그 나방 중 한 마리를 아내가 죽였다. 씻어놓은 토마토에 자꾸 얼씬거리다 아내 손에 맞아 죽은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아이가 엄마를 정색을 하며 말했다.

"엄마, 정든 나방을 왜 죽였어!“

“죽이려고 한 게 아니고 쫓다가 손에 맞아서 그런 거야.”

아이 눈에 눈물이 맺혔다.

“같이 살아서 정들었는데. 내가 잘해줄라고 그랬는데 죽어버렸잖아.”

도대체 나방한테 뭘, 어떻게 잘해주려고 했던 걸까? 아내가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나방한테 어떻게 잘해주려고 했는데?”

눈물을 떨어뜨리며 아이가 대답했다.

“몰라. 그냥 쫓으면 되지. 정 안되면 문 밖으로 내보내면 되지 왜 죽였냐고.”

“우리가 먹을 토마토에 자꾸 앉으니까 그랬지. 그리고 지 맘대로 날아다니는 나방을 어떻게 몰아서 밖으로 내보내. 잡으면 약해서 죽을 테고.”

“그래도 죽이며 안 되지. 걔도 생명첸데. 모든 생명체는 목숨이 제일 중요한 거잖아.”

“우리 아들이 이렇게 슬퍼할 줄을 몰랐네, 미안해. 성가시다고 함부로 죽여서. 그렇게 정이 들었는지 몰랐고. 다음에 어쩔 수 없이 나방을 없애야 할 때는 같이 조심조심 밖으로 내보내도록 하자.”

아이가 계속 울먹이자 아내가 덧붙였다.

“내일 먹고 싶은 거 다 말해. 엄마가 다 해 줄 게.”

눈물을 닦으며 아이가 말했다.

“아침은 유부초밥, 점심은 부대찌개, 라면 넣고. 저녁은 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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