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

노트 2021. 1. 14. 21:19

01  아내가 책을 한 권 건네주었다. 박미자가 쓴 [중학생, 아빠가 필요한 나이]. 가볍게 읽다 중학생은 몸으로 논다는 대목을 보며 생각했다. 장애 때문에 함께 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은 아이에게 가장 미안한 건 함께 운동을 할 수 없다는 것과 목욕탕에 갈 수 없다는 것.

 

02  6시 알람에 일어나 소변을 뽑고 양 발바닥을 마사지한 뒤에 다리를 뻗어 벨트로 묶은 뒤 눈을 감는다.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음을 감사하고, 아내와 아이의 빛나는 하루를 기원한다. 본가와 외가 식구들을 한 사람씩 떠올리며 별 탈 없이 즐거운 하루를 보내기를 원한다. 그러고는 새롭게 지을 집과 작업실의 구조와 그곳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내년에 있을 성공적인 개인전을 그려보고 마지막으로 아내와 아이와 아이의 아내, 그리고 손자가 있는 병실에서 편안히 웃으며 눈을 감는 모습을 미소 띤 채 상상한다. 그렇게 대략 5분 정도 ‘이미 이루어진 일’이라는 듯 생각한 뒤 호흡과 함께 명상을 한다. 들고 나는 호흡에 집중하는데 물론 수없이 많은 잡생각들이 오고 간다. 그럴 때 집중을 하기 위해 내가 어느 한 장소에 있도록 상정한다. 며칠 제주도 월령리 앞 바다의 수평선에 초점을 맞춰 들여다본다.

 

03  단열에 보태려 올 겨울 처음으로 커튼을 쳤다. 잊고 있던 꽃무늬 장식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 발을 가지런히 모아 꽃무늬에 맞추어 보고는 피식 웃었다.

그런 때가 있었다. 병원에서 지닐 때, 종종 발에서 파릇하고 생생한 식물이 피어나 자라는 상상을 하고 염원을 하던 때가. 지금은 덜 붓기를, 덜 저리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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