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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2022. 1. 14. 10:32

02

모니터 앞에 앉아 일러스트레이터로 작품보증서를 만들고 있었다. 방에서 엎드려 숙제를 하던 아이가 나를 불렀다.

“아빠 아빠, 좋은 생각이 났어. 나중에 아빠 죽은 다음에 남아 있는 그림으로 내가 사후전? 뭐 그런 식으로 전시회를 열어줄 게. 괜찮지!?”

“오! 아빠 죽으면 아들이 전시회 열어주는 거야? 괜찮지. 괜찮고말고. 작가가 살면서 이룬 미술적 성과에 따라 다르겠지만 사후에 추모전이나 기획전 같은 형식으로 전시회를 열어주기도 하는데 아들이 해주면 더 뜻 깊겠다. 아빠한테는.”

“그래? 그런 거였어? 나는 지금 내가 아주 신박한 아이디어를 낸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하고 있었던 거구만. 췟!”

“하 하. 그래도 나 죽은 다음에 아들이 전시를 열어준다니 든든~ 하구만. 작업 열심히 해야겠네. 근데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했어?”

“아빠 이번 전시회에 그림 다섯 점인가? 못 걸었잖아. 힘들여서 그린 건데 아깝더라고. 그래서 아빠 죽은 다음에라도 전시회 만들어서 걸어야 하나 생각하다가.”

 

05

강직이 일어나며 다리가 덜덜 떨려 잠에서 깼다. 방광이 있는 곳을 만져보니 가득 차 부풀어올라있었다. 핸드폰을 전원을 켜니 새벽 4시 30분. 일어나 몸을 180도 회전시켜 벽을 기대고 앉았다. 옆에서 아이가 자고 있어 핸드폰 손전등에 의지해 소변을 뽑은 뒤 뒤처리를 하고 다시 180도를 돌아누웠다. 무심코 어두운 창밖을 보았는데 오리온자리의 별들이 정확하게 보였다.

홍천 원소리에서 아버지와 함께 별들, 다치기 전 장미빌라 옥상에서 아이와 함께 보며 그리스신화와 베텔기우스와 리겔에 대해 이야기하던 오리온자리의 기억을 떠올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복잡한 세상, 현재에 충실한 삶과 현실에 충실한 삶은 어떻게 다른가? 아마도 나는 평생 묻기만 하다가 답도 없이 죽을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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