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11

노트 2022. 1. 14. 10:35

02

일요일. 오디션 프로그램인 <풍류대장>에 빠져 두 번째로 정주행하고 있는 아이와 설거지를 하고 있던 엄마와의 대화

“엄마, 뻐꾸기 걔 방학에 미국 간대.”

“뻐꾸기는 방학 때면 외국에 나가는 것 같더만. 하긴 국제중학교 간다고 했으니까.”

“그래? 어쩐지 방학 때마다 가더라.”

“뻐꾸기는 뭐래? 미국 갔다 오고 국제중 가서 공부하고 뭐 그런 거 좋대?”

“싫어하지. 좋아하겠어?”

“싫으면서도 아무 소리 안 하고, 무슨 마음으로 엄마 아빠가 시키는 대로 하는 걸까?”

“싫어도 공부하면 자기 아빠처럼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으니까 돈 많이 벌고 안정적으로 살려는 거겠지?”

“너는 어때? 하기 싫은 거 엄마 아빠가 막 시키면?”

“난 가출하지.”

“집 나가면 개고생이란 말 몰라? 너가 돈도 벌어야 하고 다 혼자 해내야 하는데? 힘들지 않을까?”

“집에 있어도 고생, 밖에 나가도 고생이면 나는 자유로운 개고생을 택할 거야.”

 

03

“인간 정신의 본질은 새로운 경험을 통해서 얻어져요...... 저도 아저씨가 보고 싶을 거예요. 하지만 삶의 기쁨을 인간관계에서만 찾으려는 건 잘못이에요. 신은 곳곳에 삶의 기쁨을 심어 두셨죠.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에 존재해요. 우린 그저 관점만 조금 바꾸면 돼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숀 펜 감독의 영화 [Into the Wild}에서 알래스카를 목표로 야생의 삶을 사는 주인공 크리스토퍼가 여행 중 만난 사람에게 한 말이다.

그리고 그가 발견한 마법의 버스에서 119일을 살다 그곳에서 숨을 거두기 전 크리스토퍼는 읽던 책의 행간에 이렇게 적는다.

Happiness only real when shared.

 

Joachim Kuhn의 <Touch to the Light> 앨범을 하루 종일 들었다. 조용하고 서정적인 터치라 글을 쓰며 듣기 좋았다. 아무 정보 없이 듣기만 할 것이 아니다 싶어 찾아보았다.

처음 들어본 이름인 요아킴 쿤은 독일 재즈계의 전설적인 존재로 사랑받고 있는 거장 피아니스트로 소개되고 있다. 2021년 발매한 <Touch to the Light>는 빌 에반스, 조 자비눌, 프린스, 밥 말리, 베토벤 등과 자신의 자작곡을 레퍼토리로 섞어 연주했다. 생소한 독일 재즈의 거장이라니,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악기인 피아노 연주자이니 그의 자작곡으로 구성된 앨범을 찾아 들어봐야겠다.

 

04

현암사가 펴내고 오강남이 옮기고 풀이한 『장자』를 다시 읽기로 했다. 역자는 『장자』 첫 단락의 풀이를 이렇게 시작한다.

“ 『장자』 전체를 통해서 가장 중요한 글자는 ‘화이위조 化而爲鳥’의 ‘화 化’이다. 앞에서 지적한 대로 『장자』의 주제는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 ‘변화 變化’의 가능성과 그 실현이다.”

오래전 친구 전시 팸플릿에 실은 짧을 글에 이렇게 썼었다. ‘변화, 그 변함없는 새로움을 잊지 마시라’고. 지난 전시를 끝내고 내내 이 생각 중이다. 더 깊고 다양하며 일관성 있는 변화와 새로움에 대해.

 

05

제2차 세계대전 중 실제로 일어났던 덩케르크 철수작전을 소재로 삼은 영화 「덩케르크Dukirk」. 시작부터 거의 마지막까지, 그러니까 영국해협을 건너 잉글랜드에 도착한 장병들의 귀환을 환영하는 시민들이 맥주를 건네주는 순간까지 잠시도 긴장을 놓지 못했다. 생사를 오가는 다이내믹한 전투 장면도, 처참한 죽음의 이미지들도 없었음에도 계속 가슴이 조이면서 답답하고 먹먹한 상태가 그치질 않았다. 다 본 뒤 바로 누워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영화 전체를 되새김질했다. 살아서 바다를 건넌 338,266명 중에 세계대전이 끝나는 날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몇이나 될까? 전쟁이 끝난 뒤 상처 없이 부상 없이 트라우마 없이 제 수명 데로 사망한 사람은 또 몇일까?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림도 이러하면 어떨까. 어떠한 자극도 격정도 피와 눈물도 없는데 화면 전체에 가슴을 조이는 긴장이 잠잠하게 흐르는.

 

06

우주에 존재하는 물질 중 수천억 개의 은하를 포함해 인류가 밝혀낸 것은 겨우 5%. 나머지는 몇몇 이론적 근거를 통해 그 존재를 간접적으로 유추하고 있는 암흑에너지(70%)와 암흑물질(25%). 현재 인류가 보유한 그 어떤 기술로도 전혀 관측되지 않는 수수께끼의 물질인 암흑물질. 이런 암흑물질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평생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입자물리학자에게 미생물학자가 말한다.

미생물학에서도 물리학의 암흑물질 개념을 차용해 사용하고 있다고. 여러 증거에 따르면 이 지구상의 미생물종이 35조 개라 추정되는데, 현재 확인 가능한 것은 백만 개 정도에 불과하니 그 나머지를 미생물학계의 암흑물질이라 칭한다고.

알면 알수록 명백해진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내가 모른다는 것뿐이란 게.

 

08

· 지대무외至大無外 지소무내至小無內

· 부처의 침묵

·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

· 임계점 - 되돌아 올 수 없는, 회복할 수 없는 지점

 

09

· 심재心齋 - 마음 굶김. the fasting of a mind. 비움

· 오상아吾喪我 - 나를 잃어버림

· 좌망坐忘 - 앉아서 잊어버림

· 무용지용無用之用 - 쓸모 없음의 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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