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11

노트 2013. 1. 11. 11:30

거울은 어떻게 공포가 되는가? 거울과 마주한 내가 보이지 않거나, 내가 내가 아닐 때. 거울 앞을 떠났음에도 내가 거기 남아 있을 때. 실재하지 않는 것이 내 등 뒤에 비춰질 때다. 모두 '나'와 연관되어 있다. 내가 거울을 보지 않는다면 거울은 마주한 사물만을 그대로 반영할 뿐 공포를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다.(09)

좀스럽게 미안해하지 않겠다. 미안해하며 좀스럽게 굴지 않겠다. 당당하겠다. 거칠고 모자라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떳떳하게 사랑하겠다. 선언하듯 말했더니 태홍 왈 "바로 그거예요. 미안함은 상대를 불편하게 하는 이기적인 변명일 뿐. 오! 새해가 되니 좀 멋져지셨는데?"(07)

이응씨 블로그에서 
 어린왕자를 만난다. 십대 중반에 만났던 바로 앳된 그 왕자다. 그를 보는 순간, 함께 별들을 돌아다니며 신기해하던 총명한 내가 오버랩되며 코끝이 찡해진다. 왕자는 그대로인데 그 총기있던 아이는 어찌 이렇게 군것들을 붙이고 나이 들어 눈 멀고 귀 어두워졌는가!
끝부분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사막의 모래 위에 아무 소리 없이 조용히 나무 쓰러지듯 넘어져 사라진 왕자와 두 개의 선 위에 뜬 하나의 별이 있는 그림. 그리고, 그, 너머.(05)

도심역 승강장 유리에 타고 있는 전철이 밝히며 가는 '용산'이라는 주홍 글자가 비춰 따라온다. 생각해보니 매일 아침 용산행 열차를 타지만 단 한 번도 용산에 다다른 적이 없다. 문득, '용산'이 은하철도999가 경유했던 어느 아득한 별처럼 멀고도 멀게 느껴진다. 나는 어느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이 별 저 별 환승하다 종착역에는 이르지 못하고 다시 출발한 곳으로 돌아오는, 뫼비우스의 띠를 종종걸음으로 여행하는 기분이다. 삶이란 종착역 없이 걷는 길 위에서 피고 지는 것이라 여기고 살지만 때로는 저 반짝이는 '용산'처럼 선명한 목적지를 향해 가고 싶을 때가 있다. 그곳에 도착해 눈물짓는다 해도.(04)

'추운 날 봄이 더 기대되듯 2013년 춥더라도 작은 기대와 성취들이 알알이 이어지길 기원합니다!!!' 라는 이응씨의 고마운 응원을 보다 문득 생각한다. 겨울이 봄으로 가는 길목만은 아닐 것이다. 밤이 아침을 준비하는 어둠만은 아닐 것이다. 겨울은 오로지 제 몫의 한 순간이고 밤 또한 그저 스스로일 뿐. 봄과 여명을 애타게 기다리느니 겨울을, 밤을 만끽하리라.(03)

새해랍시고 컴퓨터 운영체제를 윈도우7로 바꾸다 그동안 써왔던 글들을 모아놓은 폴더를 날려버렸다. 포맷하기 전에 분명 대용량저장장치에 옮겨놓은 것 같은데 뒤지고 또 뒤져도 그 폴더만 보이지 않는다. 어이할꼬! 난감해하며 가지고 있는 모든 usb를 꽂아 찾아보니 3년 전에 모아놓은 글모음 폴더가 하나 있다. 최근 글은 사라졌지만 그나마 불행 중 다행. 사태를 둘로 해석한다. 하나는 새해이니 비우고 새로이 시작하라는 뜻으로, 다른 하나는 날려버리고도 제법 태연할 만큼 글쓰기와 소원했다는 채찍으로.(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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