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12

노트 2021. 10. 10. 21:53

11  엊그제 아내가 물었다. 책 주문하려는데 원하는 책 있소? 순간 장호 형이 떠올랐다. 잠시만 기둘리소. 책을 소개했던 은태형 타임라인을 뒤졌다. 여 있네. 나를 닮지 않은 자화상_화가 장호의 마지막 드로잉. 그 책이 도착했다.

기획전에 함께 참여하며 안면을 텄지만 그와 따로 연락하며 지내지는 않았다. 어쩌다 전시장이나 민미협 행사 등에서 만나게 되면 안부를 묻고 근황을 나누는 정도였으나 그를 만나면 매번 반가웠고 기분이 좋았다. 선하다고 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는 미소와 낮고 굵으며 부드러운 목소리. 앞머리에 조그만 나뭇잎 한 장 정도 크기로 얌전하게 모여 있는 흰 머리카락.......

그가 아플 때 나는 양평에 박혀 있었다. 있지도 않은 관계마저 멀리하고 서울과 그림에도 등 돌린 채 일당 목수로 칩거하듯 살았다. 나를 찾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그의 투병과 죽음을 뒤늦게 알았다.

후 루 룩 책장을 넘기며 훑어본다. 그가 그은 볼펜 선들에 가슴이 따끔거린다. 마치 그가 엊그제 세상을 떠난 것처럼. 읽지 못하고 일단 책장에 꽂아둔다.

 

12  복지관 가는 날. 지난주에 눈 내린 후 외출한 적 없으니 잔설이나마 구경해볼까 일찍 집을 나섰다. 아직 남아 있는 눈길을 굴러가는데 바퀴에 채인 눈이 림에 들러붙어 이내 울퉁불퉁 얼어버렸다. 언 눈은 맨손으로 림을 잡고 굴릴 때마다 손바닥을 찌르고 긁어댔다. 손은 또 얼마나 시리던지. 시간이 다 되어 골목 어귀에 자리 잡고 다소곳이 앉아 장콜을 기다리는데 귀가 땅땅해졌다. 생각하길, 올 겨울 처음으로 추워보다니!

 

18  밤새 내린 눈 위에 다시 눈이 퍼붓기 시작한다. ‘쌍문동맞짱오락’을 하던 아이가 오! 한 마디 외친 뒤 벌떡 일어나 입으면 중딩처럼 보이는 파카를 입었고, 아내도 넉가래를 사러 철물점으로 출동할 겸 둘이 함께 집을 나선다. 아내는 넉가래를 사들고 와 집 앞 골목의 눈을 치울 것이고, 아이는 눈집게로 눈을 뭉쳐 여기저기 던질 것이다. 아내의 수고를 대신하지 못해, 아이와 함께 뒹굴지 못해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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