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13

노트 2022. 2. 1. 09:13

22

틱낫한 스님이 오늘 만95세로 입적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스스로 몸이 자신이 아니라고, 태어난 적도 죽은 적도 없는, 경계가 없는 생명이며 시초부터 자유 그 자체였다 했으니 죽음과 상관없이 근본자리에서 자유로울 것이다.

그가 반야심경을 풀이한 책을 몇 번 되풀이해 읽었었다. 한 구절을 옮겨본다.

 

“몇 해 전 사원에서 탠저린파티가 있었습니다. 모두에게 탠저린을 하나씩 주었습니다. 나는 탠저린을 손바닥 위에 놓고 바라보면서 그것이 실체가 되도록 호흡 명상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탠저린을 먹을 때 그것을 바라보지 않고 다른 일에 대해 생각합니다. 탠저린을 바라본다는 것은 꽃이 과일로 익어가는 것을 보는 것이고 햇빛과 비를 보는 것입니다. 손바닥 위에 놓인 탠저린은 생명의 경이로운 현존입니다. 그러므로 탠저린의 본질을 보고, 그 꽃잎의 향기를 맡고 따뜻하고 촉촉한 흙의 냄새를 맡을 수 있어야 합니다. 탠저린이 실체가 될 때 우리도 실체가 되고, 그 순간의 삶도 실재합니다.”

 

29

오후에 부정맥이 턱 찾아왔다. 이런 젠장! 또 하루 시달리겠네. 체념하고 뛰는 심장을 들여다보았다. 전처럼 아주 빠르게 뛰지는 않았다. 가슴이 아프지도 않았고 턱이 뻐근해지지도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이내 가라앉을 거라 여겼다. 그렇게 하룻밤을 지냈다. 힘들었지만 격렬하지 않아 견딜만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아침에도 같은 주기와 빠르기로 심장이 뛰었다. 심장을 다독이며 말했다. 너도 늙었구나. 젊을 때처럼 냅다 달라지 않고 잰 걸음으로 뛰는구나. 그러면서 질기구나. 이제 그만 가라앉아다오. 하루를 침대 위에서 굶으며 버텼다. 밤에는 구토 기미가 간혹 찾아왔으나 먹은 게 없으니 나오질 않았다. 혈액순환이 되지 않는지 발이 얼음처럼 찼다. 결국 한 잠도 자지 못했고 나아지지 않았다.

그렇게 이틀을 버텼으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아침 병원이 문 여는 시간에 맞춰 읍내 내과로 가 심전도 검사를 받았다. 심박수가 150이 넘었다. 의사는 바로 대형병원에 가라며 고대안암병원과 현대아산병원을 추천해주었다. 집으로 돌아와 입원에 대비해 자가도뇨 물품 등을 챙긴 후에 앰뷸런스를 불렀다. 10여분 후 도착한 응급차에 옮겨 탔다. 심박수 등 체크를 하던 응급 요원이 말했다. 하트레이트가 220이나 된다며 이대로 먼 거리를 가다 위험할 수도 있으니 일단 양평병원에서 응급조치를 취하는 게 좋겠다고. 그의 판단에 따라 읍내로 달렸다.

앰뷸런스에서 내려 양평병원 응급실 침대로 옮긴 뒤 심박수 등을 체크한 뒤에 약물을 투여했다. 가슴이 뜨겁고 아팠다. 그러고는 이내 잦아들어 정상 심박수를 회복했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미련하게 사흘이나 집에서 뒹굴었단 말인가. 담당의가 말했다. 검사 결과 심장 효소수치가 높다. 높으면 좋지 않은 건데 정상수치의 10배가 된다. 부정맥은 가라앉았으나 이 효소수치가 의심스러우니 큰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겠다.

안정을 취한 후 모닝을 타고 고민 끝에 한양대구리병원으로 향했다. 한 시간 만에 도착해 응급 수속을 밟았다. 응급 병상에 누워 기다리다 혈액검사 엑스레이 시티촬영 등 검사를 진행했다. 상심실성 빈맥으로 판정된 부정맥은 이미 끝났으니 의미 없고, 문제는 심장 효소수치였다. 저녁이 되어서야 주치의가 와 수치 상승의 원인을 찾고자 심혈관조형술을 실시하기로 했다며 동의를 구했다. 동의서에 서명했고 얼마 후에 수술실로 들어갔다. 팔 현관이 좁을 경우 허벅지로 조형장치를 집어넣어야 해서 일부 제모까지 했으나 오른 팔목 혈관을 통해 시술할 수 있었다. 다행이도 심장혈관은 깨끗했다. 시술 회복을 위해 적어도 6시간은 쉬어야 해서 하루 입원하기로 했다. 아침부터 바쁘고 마음 졸이는 하루를 보낸 아내는 밤이 다 되어 집으로 돌아가고 혼자 간호통합병실에 입원했다.

7년 전 사고 때 앰뷸런스에 실려 온 곳이 이곳이었으니 그때 생각이 날 수밖에. 짙고 어두운 공간에 혼자 먼지처럼 작은 침대에 누워 점점 멀어져가는 선망, 디스토피아의 인더스트리얼 같은 소리와 냄새, 사람이 되어 움직였던 천정 마감재 무늬들. 시끄럽고 어수선했던 병실. 자고 일어나고 자고 일어나도 가지 않던 시간들....... 그런 생각을 하며 뒤척였다.

아침에 아내가 와 처방약 없이 퇴원해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가 말했다. 심장에게 진정한 마음으로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앞으로는 이렇게 미련하게 너를 대하지 않겠다고 사과하고 인사하고 다짐하라고. 손을 심장에 얹고 그렇게 했다. 이젠 명확해졌다. 또 어쩌다 언젠가 부정맥이 찾아오면 바로 양평응급실로 가 약물치료를 받는 것. 몸의 각 부문들을 사랑할 것.

 

30

새벽에 꿈에서 깼다. 기억할 수 없는 어떤 다큐멘터리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들려오던 내레이션만 맴돌았다. 누워 천정을 보며 얼른 문장으로 정리해보았다.

 

[그는 23만 번 세상에 태어났다. 그때마다 채 한 시간이 안 되어 죽었다. 23만 번 그랬다. 그는 마지막 삶에서야 제 수명을 살았는데 죽기 전 그는 말했다.

"23만 번 일찍 죽어 얼마나 다행이었던가. 안 그랬으면 23만 번 지옥에서 살았을 테니."

그는 마지막 생을 통해 스스로 꺼져 적멸에 들었다. 윤회를 벗어났으나 절멸은 아니었다.]

3일을 앓고 난 뒤, 병원에서 하루 묵고 온 탓에 이런 꿈을 꾼 것일까?

 

31

나도 모르는 내가 타인을, 세상을, 우주를 어찌 알 수 있을까. 모를 것이다. 죽어도 모를 것이고 모르고 죽을 것이다. 죽음도 그렇다. 죽음처럼 너무도 명확하고 강력한 사실은 없다. 그러나 죽음 그 후를 알 수는 없다. 그러니 그 어떤 것도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안다고 말하는 순간 앎은 거짓이 된다. 객관적 사실이란 것도 없다. 사실이 없는데 진실이 있을 수 있을까. 그것도 없다. ‘객관’과 ‘사실’은 존재할 수 없는 추상적 개념일 뿐이고, ‘진실’은 판단 기준이 개입하므로 있을 수 없다. 판단의 기준이란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말해야 할까. 그저 내가 직접 겪고 느끼는 세상을, 그 느낌을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말하고 표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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