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22

노트 2022. 2. 21. 11:35

11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에서 평범하기 그지없는 삶을 사는 스즈메는 너무 평범해서 스파이 면접에 합격한다. 스파이로써 할 일은 특별한 연락이 올 때까지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아주 평범하게 사는 것. 그동안의 일상과 다를 바 없는 스파이활동임에도 스즈메는 스파이라고 생각하니 뭘 해도 두근거린다며 더욱더 평범해지기 위해 고민하며 즐거워한다. 늘 같은 일상 속에서 나를 두근거리게 할 어떤 것, 어떤 상상.

 

12

<죽지 않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다지 특별한 게 아니다. 인간을 제외하고 모든 피조물은 죽지 않는 존재들이다. 그것은 그들이 죽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신성한 것, 무서운 것, 불가해한 것은 자기 자신이 죽지 않는 존재임을 아는 것이다. 나는 많은 종교가 있지만 이런 확신은 매우 드물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대인, 기독교인, 그리고 이슬람교도는 불멸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한 세기 남짓한 처음의 삶만을 숭배하며, 그것은 그들이 오직 그 한 세기만을 믿는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무한한 수로 이루어진 다른 모든 세기들에 대해 처음 한 세기 동안의 행위에 의해 상을 주거나 벌주는 것으로 정해 두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는 힌두스탄 지역의 몇몇 종교에서 말하는 수레바퀴 쪽이 더욱 이치에 맞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그 수레바퀴에서 각각의 삶은 전생의 결과이고 내생을 이야기하지만, 그 어떤 하나의 삶도 전체를 결정짓지 못한다..... ‘죽지 않는 사람들’의 공화국은 여러 세기에 걸친 연습을 통해 배운 끝에 완벽한 인내와 거의 완벽에 가까운 경멸에 이르렀다. > 24

 

<호메로스는 [오디세이아]를 만들었다. 무한한 상황들과 변화를 지닌 무한한 시간의 주기를 전제로 한다면, 단 한 번이라도 [오디세이아]가 쓰이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그 누구도 아닌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며, 단 한 명의 죽지 않는 사람은 모든 사람이다. 코르넬리우스 아그리파처럼 나는 신이고, 나는 영웅이고, 나는 철학자고, 나는 악마이고, 나는 세계다. 이것은 바로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따분하게 말하는 방식이다.> 26

<나는 호메로스였다. 간단히 말하자면 나는 율리시스처럼 ‘그 누구도 아닌 사람’이 될 것이다. 즉, 나는 모든 사람이 될 것이고, 나는 죽을 것이다.> 32

 

14

아침을 먹고 전동기립기에 서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소설집 [알레프]를 읽고 있는데, 눈발이 바람에 흩날리며 사선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그 정처 없는 모습을 보다 문득 생각했다.

자. 너무도 명백하지 않은가. 이 장애의 몸으로 70이 넘어 혼자 움직이지 못할 것을 걱정하고 두려워 할 그 시간에, 70이 넘어도 혼자 제 몸을 간수할 수 있도록 단련하는 것이 개이득이라는 게. 아내는 걱정할 시간에 기도하라 했는데, 불안을 안고 뒹굴 시간에 몸을 굴려 단련하는 것이 삶을 더 건강하게 만든다.

 

15

<지구라는 땅에는 오래된 모습들, 즉 부패하지 않는 영원한 모습들이 있다. 그것들 중 어떤 것이라도 내가 찾았던 상징이 될 수 있었다. 어떤 산은 신의 말일 수 있으며, 어떤 강이나 제국 혹은 성단들이 그 상징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수많은 세가기 흘러가면서 산들은 평평해지고, 강의 물길은 항상 바뀌곤 하며, 제국들은 변천과 파멸을 겪게 되며, 별자리 모양은 변한다. 하늘에도 변화가 있다. 산들과 별들은 개체이고, 개체들은 소멸한다. 나는 보다 강하고 보다 불멸인 것을 찾았다. 나는 대대로 이어지는 곡식, 풀, 새, 사람들을 생각했다. 아마도 내 얼굴에 마법이 적혀 있는지도 모르며, 아마도 내가 바로 나 자신이 찾는 목표인지도 모른다.> 150-151

 

<나는 인간의 언어들에 우주 전체를 암시하지 않는 명제는 없다고 생각했다. 즉 ‘호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것을 낳은 호랑이들, 그것이 먹어 치운 사슴들과 거북이들, 사슴들이 뜯어 먹은 풀, 풀의 어머니인 땅, 땅을 낳은 하늘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신의 언어에서 각각의 단어는 사실들로 이루어진 그런 무한한 연결 관계에 관해 말하며, 그것도 암시적이 아니라 명백하게, 점진적인 방식이 아니라 즉각적으로 선포할 것이라 생각했다.> 152

 

16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늘 관계대명사에서 접었다 처음부터 시작하곤 했던 [맨투맨]처럼 벌써 몇 번째인지. 그 의미를 알아채는 건 고사하고 문맥을 제대로 이해할 수나 있을는지. 아니 이해는 차치하고 과연 완주나 할 수 있으려나.

 

<나는 그대들에게 말한다. 춤추는 별을 낳으려면 자신의 내면에 혼돈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27

 

<선하고 의로운 자들을 보라! 그들은 누구를 가장 미워하는가! 그들이 존중하는 가치의 서판을 부수는 자, 파괴자와 범죄자를 가장 미워한다. 하지만 그가 창조하는 자다.> 36

 

17

<나는 모든 글 가운데서 자신의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피로 써라. 그러면 그대는 피가 정신임을 알게 될 것이다.> 72

'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22023  (0) 2022.03.04
22021  (0) 2022.02.15
22013  (0) 2022.02.01
22012  (0) 2022.01.21
22011  (0) 2022.0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