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32

노트 2011. 3. 14. 13:22

교대역을 막 지나는데 태홍이 전화를 했다. “양평 가봅시다.” 작업실로 가던 길을 되짚어 왕십리역에서 만났다. 중앙선을 갈아 타 아신역에 내렸다. 마중 나온 문 목수 차로 옥천에 있는 그의 집에 들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만간 옮길 작업실을 따라 이쯤으로 내려와 살아야 할지 서울에 남아 있어야 할지 어리둥절한 태홍이 한 번도 온 적 없는 옥천과 양평을 눈에 넣어둘 작정을 하고 내려온 터라, 문 목수의 안내를 받아 옥천면소재지와 양평읍을 돌았다. 그리고는 서울로 돌아올 생각이었는데 문 목수가 “형수님, 오신 김에 콧바람이나 쐬고 가요.”라며 양평대교를 건넜다.
강상면 교평리에 들렀다 강하면으로 퇴촌으로 돌아 다시 다리를 건너 용문, 단월을 거쳐 소리산을 지나 모곡리, 유명산과 중미산 자락으로 돌아 양평역에 도착하니 점심을 먹고 나선 길이 다섯 시가 다 되었다. 굴다리에 잔뜩 붙어 있는 매매, 전월세 메모들 중 월세 쪽으로 시세를 훑어보고 상행선을 탔다.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주지 못한 채 버벅거리는 남편에 답답해하던 태홍은 생각의 근거를 마련했는지 편안한 얼굴이었다. 빈곤한 살림이 서울을 떠나 근거지를 옮긴다는 게 쉬운 일이겠는가. 명민한 태홍은 온이를 중심에 두고 앞으로의 십 년을 짓고 부수며 설계할 것이다. 복잡한 이는 아니니 모와 도 중 하나를 택할 것이다. 우선 그 간택의 과정이 비록 수중에 돈이 없어 뻑뻑하겠지만 즐거웠으면 좋겠다. (16)

내곡동에서 471번을 탄다. 아버지가 건네주셔서 읽고 있던 김병종의 [화첩기행1]을 편다. 예藝와 인人에 관한 이야기를 예인藝人이 나고 자랐거나 활동의 근거지로 삼았던 지역을 기행하며 풀어낸 책. 나운규와 김명순과 서울, 정지용과 옥천, 나혜석과 수원, 이건창과 강화, 김동리와 하동, 이인성과 대구, 남인수와 진주, 박세환과 경주, 문장원과 동래....... 눈이 뻑뻑해져 책을 덮고 창밖을 보니 책 속의 풍경과 인물들은 간 데 없고 네온사인과 간판이 얽히고설켜,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온 듯 낯설다. 두리번거리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불광. 한 호흡 가다듬고 새삼 생각한다. 예술은 예藝와 술術이로구나.
임방울과 광산 편을 펴 다시읽는다.
임방울을 흠모하여 그의 소리판을 지켰던 명창 강도근이 생전에 내게 들려준 말.
“선생이 한창 날리던 언젠가였지. 공연이 끝나고 환호화 박수가 쏟아지는디 정작 선생은 코웃음을 치며, ‘병신들, 내 목이 넘어진 줄도 모르고......’ 허더란 말이시. 놀라서 쳐다보니 선생님 눈에 물기가 어려 있었어. ‘도근아, 너는 다 알고 있었제?’ 허시면서 ‘아무래도 목을 다시 세워야 쓰것다’고 실성한 사람처럼 중얼대며 나가셨는데 3년 동안이나 선생님 소리를 다시 들을 수 없었네. 알고 보니 종적을 감춘 채 소리 처음 허는 사람처럼 목에 피를 토하며 매달린 거였어. 소리도 소리지만 그 징한 근성 땜시 그 냥반 환장하게 좋아했던 것 아닌가.”(15)

일본 지진의 원인을 하나님을 섬기지 않은 탓이라 말한 목사 모씨. 내가 기독교인이라면 그를 사탄이라 여기고 적그리스도라 칭하겠다. 기독교인이 아닌 내게 그는 예수를 팔아 권력을 좇는 일개 악덕 장사치일 뿐이다.(14)

태홍이 말한다. 내 나이 사십. 죽어라 돈을 벌어야 할지 아니면 자발적 가난까지는 아니더라도 적게 벌고 소박하고 검소하게 살아야 할지, 결정한다고 그렇게 살아지는 건 아닐 테고 돈을 벌든 스스로 가난하든 모두 쉬운 일 아니겠지만, 결정할 때가 된 것 같아요. 삶의 한 방향을. 곁가지가 있다하더라도.(13)

밭을 갈아엎을 때 쓸 퇴비를 위 밭과 아래 밭으로 나누어 옮겨 쌓아놓고 칡넝쿨에 완전히 점령당한 채 휘어져 과실나무에 그늘을 드리우는 산기슭의 나무들을 톱으로 잘라낸다. 잘려진 나무들은 전지 가위로 모양을 만든 후 덩굴이 올라올 수 있도록 서로 맞대어 비스듬히 세워 호박을 심을 밭에 꽂아놓는다. 처음 시도하는 방법인데 그 자태가 근사하다.
살구나무, 앵두나무, 매실나무, 천도복숭아나무, 복숭아나무, 자두나무, 배나무, 꽃사과나무, 대추나무, 모과나무 등 각각의 수관 크기에 따라 나무 주위에 둥글게 홈을 파 퇴비를 준다. 먹을 수 있는 열매를 맺는다고 특별히 여겨 거름도 주니 잘 자라기를.
남도에서는 꽃 소식이 올라오는데 원소리 응달의 땅은 아직 녹지 않았다. 남도에서부터 꽃 피는 길을 따라 올라오다 원소리에 닿아 봄의 절정을 맞이하는 상상을 한다. 족히 두 달은 봄 속에서 살겠구나.
지난 한 달 간, 잠 못 드는 밤이 많았다. 생각에 숨이 가빴다. 그래서 여기 오고 싶었다. 노동과 음주를 번갈아 하며 며칠 묵고 싶었다. 다행히도 오늘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있다. 정자에 앉아 함께 막걸리를 마시며 바람을 맞는 면면을 본다. 모두 당신들 덕분이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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