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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2016. 12. 2. 18:06
09. 이사한 빌라에 이제서야 도시가스가 들어오게 되어 보일러 교체 공사를 하게 되었단다. 기존 보일러 기름을 다 소비해 비워두어야 기름통을 치워줄 수 있다 하여 어쩔 수 없이 보일러를 빵빵 땠단다. 자던 아이가 덥다며 일어나더란다. 원이 부채를 찾아 부쳐주니 "나 다섯 살 여섯 살 때도 엄마가 부채질 해줬었지."라며 웃더란다. 그러고는 원의 손과 제 손을 꼭 깍지 끼고는 이러더란다. "이게 핵심이지."

08. 엉덩이를 식히려 모로 누워 조쉬 리터의 앨범 Hello Starling을 솔로 어쿠스틱 버전으로 듣는다. 스스로를 위로하며 낯선 길을 파문 없이 걸어 가는 느낌이다. 가만히 듣고 있는데 한 풍경이 떠오른다. 함께 밤을 지샌 기역과 바이 바이 헤어지고, 늦은 겨울 아침의 버스 정류장. 술과 섹스로 멍한 정신과 허기진 몸에 달팽이집 같은 가방을 둘러매고, 따뜻한 햇빛에 눈을 찡그리며 어디로 갈까 세상을 둘러보는 허술한 나. 때로 그지 같았지만 그래도 그립다. 어디든 갈 수 있었던 시절. 다리의 자유.

07. 대개의 척수 장애인들은 약하든 세든 사소하든 심각하든 참고 견디든 약에 의존하든 매일 매일 겪는 통증 한 둘 쯤 달고 산다. 가끔 무용담을 늘어놓듯 열변을 토하며 자신의 통증을 호소하곤 하는 이들이 있는데, 귀 기울여 듣다보면 내 미미한 통증에 빗대어 미루어 짐작할 뿐 끝내 그들의 통증을 온전히 느낄 수 없고 그래서 결국 알 수 없다는 사실에 이르곤 한다. 어제 치읓과 술 한 잔 할 때도 그러했다. 분명 같은 소주를 마시지만 그가 마시는 소주의 맛을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다는 사실에 다다랐던 것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타자에 대한 이해와 공감은 '나는 그를 알아'가 아니라 '나는 그를 알 수 없어'라는 사실에서 시작해야 하는 건 아닐까.

01. 12월 첫 날 아침. 기립기에 서서 베토벤의 피아노와 첼로를 위한 소나타 3번을 듣는다. 글렌 굴드가 치고 레너드 로즈가 켜는 40년 전의 연주다. 눈을 감고 익숙한 피아노 음율에 맞춰 손가락을 까닥이며 듣는데, 갑자기 검고 두꺼운 구름 가득한 저녁이 펼쳐지고 그 어두운 풍경의 길을 육백만불의 사나이처럼 빠르게 달리고 있다. 전조등을 켠 차들이 슉 슉 스쳐 지나간다. 낯선 마을로 들어가는 길 초입에 거대한 나무가 구름에 닿을 듯 장엄하게 서 있다. 경이롭고 신비로워 달리기를 멈춘다. 나무는 우주에서 내려 온, 그리고 우주로 돌아가는 길의 안내자이거나 그러한 섭리 같다. 꼼짝 않고 서서 경외하며 바라보는데 무성한, 여러 색과 채도로 물들기 시작하는 잎들이 흔들리며 피아노와 첼로 소리를 낸다. 황홀하다. 움직이지 못해도 하늘로 뻗으며 움직이며 음을 만들어내는구나, 생각하는데 누군가 톡 톡 몸을 건드린다. 깜짝 눈을 뜨니 회진을 도는 주치의다. 이어폰을 벗으니, 오늘 컨디션 어때요? 묻는다. 아, 예. 괜찮아요. 나무가 되려 했는데. 예? 아, 몸이 나무처럼 딱딱한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봐요. 주치의가 가고 다시 베토벤을 들으며 눈을 감는다. 나무는, 우주로 갔는가. 드넓은 황무지에 음들만이 바람처럼 먼지처럼 돌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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