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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2016. 12. 11. 18:04
20. 드라마 '도깨비'를 보는데, 죽은 자들이 저승으로 가기 위해 생과 사가 갈리는 문을 열면, 허공을 가로질러 저승으로 올라가는 까마득한 계단이 떡하니 놓여 있고, 노인도 아이도 심지어 개도 한 계단 한 계단 밟고 올라가며 생을 떠난다. 순간 생각하길, 난 어찌 가라고?  장애인용 경사로도 설치하라! ㅋㅋ

19.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말했다. "생은 각자의 생이다. 그래서 생에 대해 진지하게 철학을 하고자 한다면 속에서부터, 유일무이한 자기 내면에서부터 자기 자신을 논한다는 조건으로 철학해야 한다."고. 예술이야말로 모름지기 그래야 한다. 퇴원해 집으로 돌아가 그리고 쓸 때 기본 명제로 삼을 만하다.

17. 이번 주말은 뒹굴 뒹굴 '도깨비'나 몰아 보며 쉬기로 하고, 여유롭게 첫 운동치료에 임하려는데 아이가 연락을 했다. "아빠, 오늘 올 거지? 꼭 와. 꼭 와야 돼. 꼭." 목소리가 하도 귀여워 웃으며 "아빠가 꼭 가야만 하는 일이 있어?" 물었더니 간단 명료하게 대답했다. "보고 싶으니까." 그래, 그것보다 더 간곡한 이유가 있으랴. 하여 중앙선을 타고 집으로 가고 있다. 햇볕은 따뜻하고 산기슭과 땅 위의 잔설이 포근하다. 누군가 간절히 나를 보고 싶다 하면 춥고 배고파도 굽이 굽이 고개라도 물이 가로 막고 흘러도 어디든 달려 갈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날이다.

13. 프레데리크 시프테는 미셸 드 몽테뉴의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가장 좋은 죽음은 그 순간에 진정한 벗 한 사람 곁에 있어주는 것'이라 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는 데 산파가 필요했다면, 이 세상에서 퇴장하는 데는 그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몽테뉴의 글을 인용하면서. 책을 덮고 생각한다. 내가 죽을 때 곁에 있어줄 지혜롭고 진정한 벗은 아마도 원이려니. 그런데 이 욕심과 예감을 원이 듣는다면 그의 마음에는 어떤 감정이 일렁일까? 차마 지금 묻지는 못하겠다.

11. 일 년 반만에 찾아 온 원적사. 휠체어 타고 와서 각광을 받을까 싶어 법당 밖 양지 바른 곳에 몰래 앉아 스님의 법문을 듣는다. 인연을 소홀이 하지 말라 한다. 가까이 인연 맺고 있는 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마음을 살펴보라 한다. 내가 아프다 칭얼대지 말고 그들의 아픔을 들여다보라 한다. 가슴이 찡한 것이 아리다. 자신만을 짝사랑하며 살아 늘 인연에 소홀했던, 더구나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특히 그러했던 나. 그로인해 삶에 상처를 입은 이.들....... 고개 숙이지 않고 등뼈를 펴고 하늘을 올려다 본다. 푸르고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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