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42

노트 2017. 4. 15. 08:22

17. 비 비 오시고 벚꽃 잎 잎 떨어지신다. 집에서 낮 술 술 한 잔 한다. 병원에 있을 때 간절히 원했던 비 오는 날의 낮술, 그 순간이다. 꿈은, 이루어진다. ㅎ

 14. 재활치료 가는 날. 원이 평소보다 서둘러 집을 나서잖다. 그러지 뭐. 옮겨 타고 휠체어를 싣고 출발한다. 백현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해야 하는데 원은 아무 말 없이 직진 신호를 기다린다. 우회전 안 하셔? 원이 지긋이 말한다. 기둘려 보소. 다 이유가 있지 않겄소. 직진해 용천3리로 들어서자 길 좌우로 벚나무들이 줄지어 이어진다. 꽃들이 활짝 활짝 피어 밝고 화사하다. 하늘도 맑다. 아! 원이 꽃구경을 시켜주고 있는 것이로구나. 이 아침에. 만개해 언제 질지 모르는 꽃을. 때마침 조동진이 ‘진눈깨비’를 부르고 있다. 오래고 오래 전, 현천리의 음습한 그늘 길을 걸으며 원을 꼬드기려 불렀던 노래. 물었다. 이거 설정이야? 이 노래? 아니. 순간 떠올라 온 길이라 그렇게까지 용의주도할 시간은 없었네요. 어쩌면 당신을 생각하는 내 마음이 진눈깨비를 불러냈을까? 음 하 하. 벚꽃축제를 준비 중인 편전마을을 지나 설매재까지 올라갔다 되돌아온다. 힘들게 고개까지 이어져 올라온 벚나무 행렬은 고개 너머 어디까지 가고 있을까? 내려오는 길에 진눈깨비 한 번 더 듣는다. 너는 이 거리를 그토록 사랑했는데 너는 끝도 없이 그렇게 멀리 있는지 우우우 너의 서글픈 편지처럼 거리엔 종일토록 진눈깨비. 따라 부르다 무언가 복받쳐 목에 엉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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