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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2017. 12. 6. 16:30

20  에드바르드 그리그 Edvard Hagerup Grieg, 1843-1907, 노르웨이

<피아노협주곡 A단조 Op.16> <교향곡 C단조 EG 119> <현악 4중주 1번 G단조 Op.27>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2번 G장조 Op.13>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3번 C단조 Op.45> <페르 퀸트 모음곡 1번> <피아노를 위한 23개의 짧은 소품>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A단조 Op.36> <In Autumn Overture Op.11>


19  꿈을 꾸었다. 출판물 기획사 사무실이었다. 휠체어에 앉아 면접 담당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통통하고 수더분하게 생긴 여직원이 내 앞에 앉아 면접을 보았다.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쓰리디맥스 등 디자인에 필요한 프로그램 활용 능력을 강조하며 어필했다. 휠체어를 힐끗힐끗 쳐다보던 여직원이 우리 회사에 적합한 분은 아닌 것 같다며 전철역까지 배웅을 해주겠다고 했다. 사무실을 나와 전철역으로 걸어가던 여직원이 말했다. “일이 필요하시면 전단지 붙이는 알바는 어떻겠어요?” 웬 전단지?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어떻게 전단지를 붙이겠느냐고 했더니 여직원이 말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지금 걷고 있잖아요.” 어리둥절해하며 나를 보자 그의 말대로 내가 빈 휠체어를 밀며 그와 나란히 걷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며 깜짝 놀랐다. 걸음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불안하지도 않았다. 걷고 있다니. 내가 걷고 있다니. 여직원이 나온 김에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미술 강연을 보러 가자고 했고, 그를 따라 미술관에 들어섰다. 그림이 걸려 있는 전시장에서 한 인사가 현대미술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었고 청중이 가득했다. 휠체어를 밀고 가 빈 자리에 끼어 앉았다. 걸을 수 있으나 당장 버릴 수는 없는 휠체어를 간수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고 꽤 성가셨다. 강의의 내용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강사의 시니컬하고 도전적인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아 이내 여직원과 밖으로 나왔다. 휠체어를 밀며 걷는 두 다리가 내내 신기했다. 여직원과 헤어진 후 사람들이 번잡한 전철역 앞 광장에서 한참 자전거를 탔다. 자전거는 노란색이었다.


16  원이 말한다. 할 수 없는 걸 하려하지 마시고 할 수 있는 걸 그냥 하셔요. 갈등하지 마시고. 지난 봄, 퇴원해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했던 말이다. 반년이 훌쩍 지났는데 여전히 할 수 없는 것에 미련을 두고 사는 탓에 할 수 있는 일들을 간과하고 있다. 어리석게도.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해야지. 그리하여 원이 나에게 뻗치고 있는 자잘하고도 복잡한 신경의 회로들을 하나 둘 꺼주어야지. 사소하지만 그만큼 여백을 만들어주어야지. 말만 하지 말고. 쫌!


12  뒷산 위로 갓 떠오른 해를 등지고 아이가 당근을 뽑고 있다. 검은 산을 배경으로 아이의 윤곽만이 빛나며 움직인다. 아이가 뱉고 마시는 숨이, 입김이 구름처럼 몽글몽글 반짝이다 사라지길 반복한다. 입김과 함께 아이의 낭랑한 목소리도 피었다 지는 것 같다. 베란다에 자리 잡은 동백나무 옆에 앉아 아이와 빛과 어둠이 빚는 아름다운 아침을 본다. 분명, 잃어버린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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