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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2022. 1. 14. 09:3809
얼마 전 후배 창고에서 가지고 온 짐들 중에 옛 작품 사진들이 있었다. 하도 오랜만이라 낯설고 반가웠다. 90년대 작품들은 작업실을 전전하면서 이사할 때마다 대부분 폐기 처분했기 때문에 남아 있는 것이 없고, 자료도 알량하기 그지없다. 그때는 나 자신의 존재가 그저 무의미했으므로 내가 만들어낸 것들에도 애정이 있을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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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그리려 했다. 깊은, 여러 겹의 어둠. 그러나 만들어낸 화면의 어둠은 얕고 얇았다. 덧칠에 덧칠을 해도 별무소용이었다. 물러나 앉아 그림을 보다 문득 생각하기를, 내가 여러모로 어둡지가 않은 인간이구나. 그러니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