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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2011. 1. 22. 11:43

주말, 집에서 뒹굴며 [아저씨]와 [추격자]를 보았다. 영화는 영화를 위해 잔혹해지는구나. 언론은 언론을 위해 선정적이고 권력은 권력을 위해 뻔뻔하고 기술은 기술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자본은 자본을 위해 잔인해지고 예술은 예술을 위해 화장을 하듯.(30)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단다. “야일이가 나처럼 역마살이 끼어 정처 없더니 아이 낳고는 많이 달라졌어.” 그동안 한 곳에 발붙이지 못하고 떠다니듯 살아가는 자식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짐작해보니 마음이 아리다.
형제들끼리 모여 집안사를 이야기하다 보면 동생이 늘 하는 말이 있다. “그때 형은 집에 없었잖아.” 그럴 때마다 내가 그렇게 겉돌았었던가? 생각하며 크게 긍정하지는 않았었는데 아버지의 말씀을 전해들으니 정말 그랬던 모양이구나, 수긍할 수밖에. 내가 그러는 동안 장남의 역할을 나누어 애써준 누님과 동생에게 고맙다.(27)

[촘스키의 아나키즘]을 다 읽었다. 두서없이, 거칠게 정리해본다. 촘스키는 “무정부주의자에게 자유란 추상적인 철학적 개념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타고난 모든 권력과 능력 그리고 재능을 완전히 발전시켜 사회에 득이 되게 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하고 구체적인 개념”이라 정의하며 “무정부주의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특징이라고 생각한 부분은 고도로 조직화된 사회를 추구함으로써 서로 다른 많은 종류의 조직체(작업장, 공동체 그리고 다른 다양한 형태의 자발적인 협의체)를 통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명령을 내리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해당 조직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이 직접 조직을 관리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는 점”이라 말한다.
그는 스스로 무정부주의자는 아니라 고백했고 편집자가 서문에서 말했듯이 ‘자유의지적 노동조합주의’를 지향하는 듯 하다. 국가가 아니라 노동자들이 스스로 조직하고 관리, 경영해나가는 체제.
그러면서도 단기적 목표로 국가 권력의 기본 요소들을 보호하고 강화해야 한다 말한다. 국가라는 것이 근본적으로는 부당한 권력이지만 민주주의와 인권과 복지를 신장하면서 일궈낸 진보를 중요시 여긴다. 아니, 그 진보를 퇴보시키려 혈안이 되어 있는 민간 전제정치 체제(다국적 기업의 자본)의 권력 독점을 막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 미약하지만 국가가 수행하고 있는 자유의지적 비전(무한 경쟁체제의 자본이 공격하고 있는)의 몇 가지 특징을 보호해야 하며 “결국에는 훨씬 더 자유로운 사회에서 적당한 환경이 조성되었을 때 이런 국가 제도를 없애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근시안적으로 엄격한 신조만 따르는 데 치중”하고 있는 자유의지적 운동에 우려를 표명한다. 다국적 기업들도 자유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권한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러한 ‘국가의 권한을 최소한으로 줄인다’는 명제에 현혹되어 국가 권력 대신에 그보다 더 영향력 있고 더 나쁜 권력인 민간 전제정치체제의 힘이 커진다는 것을 간과한다는 것. 
앞서 말했듯이 그는 무정부주의를 철학적 개념보다는 현실에서 적용하고 발전시켜야 할, 실현 가능한 구체적 개념으로 보고 그 속에서 유의미한 실천 조건들을 찾고 그 가능성들을 세세하게 짚어본다.
무정부주의에 있어서 현존하는 민주적 국가의 의미와 ‘민간전제 체제’.......그저 뭉뚱그려 형이상학적인 철학적 개념으로만 이해하려했던 무정부주의에 대한 생각의 갈래들이 더 늘어났다.
그가 볼셰비키즘을 좌파라 인정하지 않고 레닌을 사회주의에 해가 되는 가장 위협적인 인물이라 생각하며, 소련의 붕괴를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패배와 같은 의미로, 사회주의의 가장 거대한 적의 몰락으로 본 것도 흥미롭다.(24)

서대문의 다다미 방. 연탄난로와 창틀에 올라 앉아 몰래 피우던 담배. 추위. 등화관제 훈련일이면 볼 수 있었던 은하수. 눈 쌓인 골목을 천천히 걸어 내려가시던 아버지의 뒷모습. 노심초사 아버지를 기다리시던 어머니. 모노 스피커에 귀 기울이다 스테레오 기능에 놀라워했던 산요 카세트 데크. 낡은 책상. 서랍 속에 놓여있던, 1집부터 11집까지 동생과 내가 사 모은 레드제플린의 카세트 테잎들.
십 대 후반의 나....... 친구가 보내준 갓 구은 책 [레드 제플린]을 받고 뒤적이니 파릇하고 여리고 뜨거웠던 때가 떠오른다. 그 후로 나는 얼마나 자란 것일까?
파일에 레드 제플린 1집과 3, 4집, 그리고 낱 곡으로 모아져 있는 곡들이 있다. 엠피쓰리 플레이어에 넣고 다니다 책을 읽으며 노래가 언급될 때마다 바로 들을 생각을 하니 흐뭇하다. 고마워요. 잘 읽을 게요. 지읒씨.(23)

태홍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시청률 1%도 안 나올 국악 한마당을 보면서 사온군 왈 엄마, 아름다운 음악이예요,라 하네요. 허 참] (22)

아주 오래된 농담, 나의 아름다운 이웃, 친절한 복희씨, 잃어버린 여행가방, 그 남자네 집. 내가 읽은 선생의 책으로 모두 2000년 이후에 출간되었다. 친절한 복희씨를 읽으며, 늙은이의 깊고도 부드러운 그러나 뼈 있는 지혜가 여기 있구나 생각했었다. 고루한 내 생각의 한 겹을 벗겨내는 쾌감을 얻었었다. 선생의 명복을 빈다. 친절한 복희씨, 다시 읽어봐야겠다.(22)

뒷모습들을 제법 많이 찍었다 생각하며 하나하나 열어본다. 몇 백 컷 되지만 기대와 달리 정작 그림으로 옮길 만한 것들은 몇 장 없다. 그림을 그리겠다고 찍은 것도, 더구나 그림의 상像을 염두에 두고 찍은 것도 아니니 그럴 터이지만 사진 속의 뒷모습들은 허하다. 생각한다. 찍기에 급급해 세심히 들여다 본 적 없구나. 사진의 함정에 빠져 의기양양했던 게로구나. 당분간 찍지 말고 보고 느끼는 데 집중하기로 한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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