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92

노트 2017. 9. 12. 15:30

18  매트에 앉아 발 마사지와 장운동을 마치고 페북을 열어보았다. 한 페친이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국제도서주간입니다. 규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신과 가장 가까운 곳의 책을 집어 들고, 52페이지를 폅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 문장을 ‘상태 업데이트’에 포스팅합니다. 책 제목은 알리지 마시고 이 규칙도 당신의 상태 업데이트의 일부로 옮겨 주십시오.” * 여기서 하늘 나라의 말씀을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의 시적 조건으로 대두된다.] 마침 매트 옆 수납 바구니에 읽다 만 책 한 권이 있어 꺼내 52쪽을 폈다. 그리고 다섯 번째 문장을 찾아 읽었다. ‘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 ㅎ


16   베란다 창으로 보니 하늘이 참 좋았다. “사온, 우리 산책할까?” 오늘의 게임 할당량을 이제 막 다 쓰고 기지개를 켜며 무료해지기 시작하려는 아이를 꼬드겼다. 의외로 선선히 “좋아.” 한 마디 날리고 나가 계단에 경사로를 깔았다. 굴러 내려가 밖으로 나서자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빛의 속도로 골목을 빠져나가 사라져버렸다. 한가롭게 마을을 산책했다. 아! 세상은 온통 그냥, 두 말할 나위 없는 가을이었다. 노래를 불렀다. ‘어딘들 세상의 시작인들 그 끝인들 어딘들 못 가리 몸으로든 혼으로든 울든 웃든 어딘들 못 가리 가을이든 봄이든 한 겨울이든 발자국을 남기든 흔적을 남기지 않든 어딘들 못 가리 굴러 가든 날아 가든 겨우 이 한 세상 그 어디인들.’





15  하늘 파랗고 바람 시원한 가을, 병원에 가려 장콜을 탔다. 이승철의 라이브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 20여 년 전 새해 첫 날에 눈 쌓인 치악산 꽃밭머리에서 사귀고 싶다고 고백한 이응이란 친구가 있었더랬지. 하늘 파란 가을에 그와 이승철 라이브를 보러 갔었더랬지. 촌스럽게도 깔끔하게 차려입고 푸핫, 알 없는 안경도 썼었더랬지. 그래, 그런 시절도 있었더랬더랬지. 날 참 좋다.


15  토성으로 녹아든, 굿바이 카시니.


12  아이들이 문제라고? 아이들의 처벌을 강화하라고? 뻔뻔한 어른들이다. 아이들에게 머리 숙여 미안하다 사과해도 모자라고 모자랄 판에, 아이들을 더 일찍 더 오래 가두라고? 김규항의 말대로 아이들의, 청소년들의 문제는 없다. 어른들의 문제가 있을 뿐.


11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구월을 지나 어느새 시월로 접어들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홍천 내면의 은행나무숲에서 돌아왔고 생전 처음 보았던 쌍무지개가 하늘에 나타다 기이하다가 막 사라졌으니 이제 사흘 남았다. 떨어지려면. 사흘 전인 2015년 10월 11일에 머물면서 그날의 ‘사온일기’를 몇 번 읽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소나기가 세차게 쏟아지기 시작했는데 길 왼편 양평읍 위에는 해가 창창했다. 기이한 소나기로구먼. 신애리 쪽으로 우회전 해 접어드는데 네가 소리쳤다. “무지개다!”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무지개가 떠 있었다. 엄마와 너는 “오 호 오 호 무지개 무지개” 박자를 맞춰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조금 더 국도를 달리다 용천리 마을길로 접어들어 길가에 차를 세웠다. 비상등을 켜두고 모두 내려 비를 맞으며 무지개를 바라보았다. 둥근 반원의 무지개를, 땅 끝에서 땅 끝까지 이어진 이렇게 선명한 무지개를, 그것도 비록 한쪽은 희미하나 쌍무지개를 내가 본 적이 있었던가? 시작에서 끝까지, 반원의, 선명한 무지개를. 아름다웠다. 우리 앞날에 영광이 있으려나? 좀 억지스럽지만 그런 징조로 읽었다. 비가 그치자 무지개가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무지개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동영상을 찍으며 그 변화를 중계하고 있던 네가 말했다. “무지개야. 잘 가. 고마웠어.”] 자, 마음을 가다듬고 가자. 그 날로. 지나고 나면, 지나고 나야 편안해질 것이다. 그래야 이 마음의 진동이 가라앉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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