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91

노트 2017. 9. 1. 16:32

10 ‘사온일기’를 정리하다 2015년 8월 27일과 만났다. 수정하기 전에 일기를 쭉 읽어내려가다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함께 했던 여행 중 어쩌면 가장 아름다웠던 나날들 중 하나였을 그 하루. 읽으며 수정하다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 날 일기 중 부분.

   [하늘목장에 도착했다. 산의 녹음은 짙고 하늘은 맑고 깨끗했다. 구름도 바람도 적당했다. 표를 끊고 들어가 음료를 사러 미니숍에 들렀는데 네가 대뜸 컵라면을 집어 들었다. 허. 그래? 내친 김에 큰사발면 두 개 사서 셋이 나누어 먹었다. 이후로 저녁 먹을 때까지 과자 한 입과 음료 외에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니 엄마 말대로 사발면은 네 선견지명인 셈. 양 먹이주기 체험을 하고 풀밭을 거닐다 나무놀이터에서 놀면서 산 중턱까지 올라가는 트랙터를 타기 위해 기다렸다. 2시 트랙터를 타고 언덕을 올랐다. 트랙터가 멈춘 곳은 주변 풍경이 두루 보이는 해발 1000m 고지. 높은 곳에 올라오니 하늘은 더 파랗고 구름은 더 부럽게 느껴졌다. 바람도 거세졌다. 60m 높이의 하얀 풍력발전기가 바람을 가르며 돌아가는 소리가 웅장했다. 풍력발전기를 쳐다보며 네가 말했다. “와, 입이 딱 벌어지네.” 사람들은 트랙터가 닿은 곳 주변을 산책하며 내려가는 다음 트랙터를 기다렸지만 우리는 한 발 한 발 앞으로 앞으로 더 높은 언덕을 향해 올라가다 바위에 앉아 물을 마시며 쉬었다. 내가 물었다. 어찌할까? 엄마가 선동했다. 더 올라갑시다. 아예 선자령까지. 너도 가자! 하면서 힘을 보탰다. 언덕을 오르고 숲 사이를 지나 해발 1,157m의 백두대간 '선자령'에 올랐다. 산 능선에 줄줄이 서 있는 하얀 풍력발전기들과 강릉 시내와 푸른 바다가 내려다보였다. 아무도 없었다. 너는 풍경을 바라보며 “끝내준다”며 탄성을 질렀다. 바위 위에 올라 바람을 맞으며 춤도 추었다. 족히 40분은 넘게 올라왔는데도 군소리 없이 즐겁게 오른 네가 기특하고 고마웠다. 엄마가 말했다. “사온, 네 덕분에 우리 가족이 여기까지 올라왔네. 멋져. 고마워 사온. 우리는 여행에 죽이 잘 맞는 가족.” 허공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천천히 노래를 부르며 산을 내려왔다.]


07 예술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06 ‘평화의 소녀상’은 종로구 율곡로 6, 그곳에 홀로 의연히 앉아 있어야 했다. 거기서 ‘사람’에 대해 말했어야 했다. 복제되어 전국으로 소비되면서 ‘민족’을 들먹일 게 아니라.


05 엄마와 아버지께서 옥수수와 돼지고기양념볶음, 깻잎절임, 냉동식품 등을 이고지고 버스를 타고 양평으로 오셨다. 버스 타고 오는 동안 속이 불편하셨다는 아버지께서 해장을 원하시며 말씀하셨다. “어제 자기 전에 화장실 가려고 나왔는데 창가 탁자에 달빛이 환하게 내렸더라고. 다가가 달을 보니 어찌나 교교한지. 그냥 잠들 수가 없어서 막걸리를 마셨는데 좀 과했나 봐.” 원이 막걸리를 마련해 와 아버지는 해장술을, 나는 낮술을 마셨다. 가실 때 노구를 이끌고 먼 길을 오고 가시는 것에 죄송해 하려다 이내 접었다. 오! 좀 빨라졌는데?


03 공세리 흑천을 거슬러가며 산책한다. 흘러가 남한강과 만나는 내는 산 그림자에 어둡고, 건너 산의 나무들을 덮고 흘러내려 음산한 기운을 만들어내는 칡넝쿨이 매력적이다. 저런 기운, 언제 한 번 그려볼 테다. 송장메뚜기가 팔딱 팔딱 뛰어다니는 길가 풀숲에 무릇이 살랑거리고 있다. 전 같았으면 어디를 가든 풀꽃에 탐닉했겠지만 요즘은 나무를 더 많이 본다. 간혹 사진 찍기도 하지만 그저 바라보고 우러러본다. 나무의 이름에도 그다지 관심이 없다. ‘서 있다’는 것이, 그 위용이 보기 좋을 뿐이다. 부러워하면 지는 거라지만 아직 나무의 직립이 부럽다.


02 가을 조동진 술 바람 노래 엄마 수다 가족 웃음을 운곡정雲谷亭에서 만끽했다고 한다. 구름이 그곳까지 내려오지는 않았겠지만 낙엽송은 조금씩 갈색으로 물들고 벚과 산딸의 잎들도 붉어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고마리와 미꾸리낚시가 마타리와 며느리밑씻개가 물봉선이 주변에 피어 있었을 것이고, 앞 산 아래 흘러내려가는 물들은 웃다 울다 했을 것이다. 숲에서 새들도 그랬으려나? 그 모두가 어울려 하나의 순간으로 찬란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새는 오줌에 전전긍긍해하며 누워 있거나 집 안에서 굴러다니다 문득 함께 하지 못함을 미안해했다. 그러다 생각하기를, ‘이건, 누구에게도 미안할 일이 아니다. 내가, 아프다면 내가 가장 아프고 속상하다면 내가 가장 속상한 사람이다. 가끔 고마워할지언정 누구에게도 미안하지 않다. 나에게도. 하물며 원에게도.’


01 그동안 더위와 비 때문에 짬 시간에도 실내에서 맴돌았는데 오랜만에 병원 뜰에 나와 햇빛을 받으며 앉아 있다. 의자에 발을 올려 다리를 뻗는다. 하늘이 맑고 파랗다. 벚나무 잎은 단풍이 들기 시작했고 이미 갈색이 되어 바스락거리며 떨어지는 잎들도 있다. 맥문동 꽃줄기를 흔드는 바람도 적당하다. 밭 건너 산에는 명암이 선명한 나무들이 몽실몽실 한 나절 꽃처럼 피어 풍요롭다. 아침에 학교 가려 현관 문을 연 아이가 ‘엄마, 문 열었는데 하늘이 파래서 깜짝 놀랐어.’라고 했고, 그때 아이의 목소리를 타고 가을이 집 안으로 흘러 들어와 선선해지는 느낌이었다. 아! 어느새 구월이고, 그래도 구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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