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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2017. 6. 23. 15:38

 

27  그동안 거의 매일 기록했던 8년 동안의 ‘사온 일기’를 정리하고 있다. 하드 안에 파일로 존재하다 불의의 사고로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인터넷 출력소를 통해 연도 별로 한 권씩 책으로 묶고 있다. 국판으로 한 권당, 그러니까 한 해당 대개 250쪽 쯤 되는데, 현재 세 살까지 끝내 책으로 만들었고 네 살을 정리하고 있는 중이다. ‘0217’이라고 날짜를 쓰고 그날의 일기를 기록하는 형식인데, 해마다 한 날의 숫자에 본능적으로 울컥했고 오늘도 그러했다. 찰나에 마음이 반응하는 그 숫자는 ‘0416’. 이제 ‘416’은 숫자가 아니라 커다란 상실이며 깊은 애도가 되었다.

 

25  아이가 말한다. “아빠, 우리 세 식구 유형을 내가 말해볼게. 엄마는 ‘꺼진 불도 다시 보는 신중형’. 아빠는 ‘건강한 장애인형’. 나는 ‘뒹굴 뒹굴 만사태평형’. 크 크.”

 

22  발과 손에 자석을 붙이고 누워 ‘차마고도 극장판’을 본다. 농부 셋이 돈을 모아 평생 소원이었던 오체투지 순례를 시작한다. 쓰촨성을 출발해 목적지인 라싸까지 2,100km에 달하는 길을 하루 평균 6km씩 간다. 눈이 오든 비가 오든 먼지바람이 불든, 아스팔트든 눈밭이든 얼음이든 흙길이든 돌밭이든 피하지 않는다. 시냇물이나 담장을 만나면 그 거리만큼 미리 오체투지를 하고 건넌다. 단 한 번의 오체투지도 빼먹지 않는다. 순례의 이유를 묻자 한 농부가 말한다. “사람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어려운데, 이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이 순례는 내 생애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이다.” 그들은 다섯 걸음마다 한 번씩 몸을 땅에 던지며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날 준비와 함께 현 생의 인류와 모든 생명의 평화를 위해 기도한다. 그렇게 대략 1년을 쉬지 않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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