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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2022. 1. 14.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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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요일 이른 아침, 밤새 앓던 원은 차를 몰고 양평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그리고 카톡을 보냈다. [큰 병원 가라네. 도저히 운전할 수 없어서 y에게 부탁했어. 지금 y 차타고 한양대구리병원 가고 있는 중] 시간이 흐른 후 원이 연락했다. [담낭염이라네. 바로 입원하랍니다]

초등학생 아이와 장애인 남편을 돌보던 가장이 입원했다는 소식이 양평에 퍼졌고, 두 남자의 끼니를 걱정하는 이들의 원조가 줄을 이었다. 원을 구리에 데려다주고 돌아온 y가 즉석밥과 라면 등을 넣어주는 것을 시작으로 s, k와 i, h, j, m 등이 삼계탕, 갓 지어 여러 그릇에 소분한 밥과 따뜻한 카레 한 냄비, 멸치볶음 소고기장조림 총각김치 어묵볶음 오이김치 등의 각종 반찬, 호박부침과 옥수수, 과일과 아이스크림 과자와 컵라면, 여러 종류의 즉석요리, 심지어 키친에 맥주까지. 4일 동안 시간차를 두고 날라다 주었다. 원이 c 등 기회를 엿보고 있는 대기자들도 있다고 해서 뜻은 고마우나 보관 불가를 이유로 고사하라고 전했다. 가뜩이나 용량이 적은 냉장고에 이 많은 반찬들을 어떻게 넣나 고민 끝에, 아이의 도움을 받아 김치냉장고에 들어 있던 된장 등 장류와 가루 등을 모두 빼 공간을 만든 뒤 테트리스를 하듯 아귀를 맞추어 넣는데 성공했다.

음악줄넘기, 코딩 등 교습 때문에 읍내들 다녀와야 하는 아이 스케줄에 따라 y와 s 등이 픽업해주었다. j는 매일 안부를 물으며 무슨 일 있으면 지체 말고 연락하라고 신신당부하는 하기도 했다. 모두 원의 지인들로, 이렇게 고마울 수가!

양평에서 두 남자가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풍족한 식생활을 누리는 동안 원은 혼자 금식 상태로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과잉진료를 의심할 만큼 각종 검사에 시술까지 받았다. 그럼에도 지인들의 도움과 아이 덕분에 자신이 책임져야만 했던 일상이 별 문제 없이 잘 굴러가는 걸 확인한 원은 코로나 끝나면 혼자 세계 여행도 할 수 있겠다며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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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점을 먹으며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 2시에 엄마 수술 받을 거야. 밥 먹고 엄마 수술 탈 없이 잘 마무리되길 기도하자.”

“응.”

“근데 누구한테 기도할 건데?”

“음....... 운명한테?”

“운명? 하 하. 부처님이나 예수님이나 아니면 신한테가 아니고?”

“아빠 다쳤을 때는 부처님한테 기도했었는데 지금은 뭐.......”

“왜?”

“부처님이나 예수님이나 다 좋은 사람들이긴 한데, 종교는 별로라.”

“왜 별로야?”

“종교는 믿는 거잖아. 근데 잘 믿기질 않아서. 세상에 없는 이야기를 하면서 믿으라고 하니까. 근데 아빠 종교 믿으면 뭐가 좋은데?”

“천국 간다잖아.”

이 대목에서 아이는 어이없다는 듯 한참을 웃은 뒤 말했다.

“예수 천국 불신 지옥, 그런 거? 말이 안 되는 거잖아. 천국도 지옥도 없는 건데 무슨.”

“하 하. 그럼 우리 누구한테 아니 뭐한테 기도를 할까?”

“글쎄.......”

“음....... 우리, 우리의 간절함에게 기도할까?”

“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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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아침 6시에 일어나 소변을 뽑는다. 오늘의 비올 확률과 미세먼지 상태를 확인하고 창문을 열면 소리들이 선명하게 몰려들어온다. 참새나 박새처럼 작은 새들의 높고 가는 소리가 먼저 들린다. 그 뒤로 가장 기운이 센 앞 집 닭의 울음이 소리의 공간을 점령해버리고, 멀리 여기저기서 여러 마리의 개 짖는 소리가 컹 컹 점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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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원의 수술 소식을 들은 엄마가 전화하셨다, 퇴원하면 당신 집에서 며칠 몸조리하는 건 어떻겠냐고. 원과 통화하며 엄마의 뜻을 전했더니 자기는 상관없는데 아들의 의견을 듣고 싶다며 바꿔달라고 했다.

“온, 할머니께서 벽제 집에서 한 일 주일 몸조리 하라고 하시는데 어때? 엄마 수술 받은 다음에 할머니 댁에서 쉬었다 집에 가도 될까?”

아이가 명료하게 대답했다.

“아니! 와. 집에 와. 내가 일 주일동안 엄마 꼼짝도 안 하게 할 테니까. 그냥 와. 집으로 오라고!”

하여 오늘, 원은 퇴원 즉시 집으로 돌아왔다. 과연 아이는 공언한대로 엄마를 꼼짝도 안 하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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