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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2022. 1. 14.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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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에서 일을 본 원이 닭한마리를 들고 귀가했다. 소주 한 병도 잊지 않았다. 상을 차린 원이 컴퓨터로 ‘불후의 명곡’을 틀었다. 보면서 저녁을 먹는데 모르는 가수가 강진의 <막걸리 한 잔>이라는 곡을 불렀다. 아버지를 회상하는 내용이었다. 노래가 끝난 뒤 강진이 여덟 살에 아버지를 여읜 사연을 이야기했다. 그때, 아이가 내 어깨를 턱 짚더니 말했다.

“아빠, 아빠 떨어졌을 때 엄청 슬펐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살아 있으니 됐어. 살아 있기만 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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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그림이 늘어가면서 거실 공간이 그만큼 좁아지더니 이젠 완성된 그림을 세워둘 곳도 마땅치 않다. 대대적인 정비가 필요하나 그 모든 노동이 원의 몫이고, 그렇게 공간을 확보했다 손 치더라도 언 발에 오줌 누기일 터. 그리고 이 마당에 또 불쑥 들어오는 ‘왜 그리는가’라는 생각은 또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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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콜을 기다리며 집 주변을 둘러보았다. 접시꽃과 개망초가 대세였다. 접근이 어려운 공터에 무리지어 피어 있는 개망초들을 넌지시 바라보는데 옛날 생각이 났다. 코스모스 군락 속으로 들어가 웅크리고 앉아 몸을 숨긴 채 비밀기지라며 좋아했던. 그 안전과 안락. 키가 1미터도 되지 않았던 그때를 떠올리다 그 작디작은 옛날의 나, 그가 안쓰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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