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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2011. 8. 23. 10:28

양평으로 내려와 게으르게 자동차로만 움직여 군살이 늘었다. 닿지 않던 살들이 서로 부빌 지경에 이르러 내 몸이 낯설어졌다. 곧 말이 살찌는 계절. 나 말띠인데 어찌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차에 지읒씨 블로그에서 화두라 할 만한 문장 하나를 얻었다. "살빼기는 몸과 마음으로 하는 공부이며 도 닦기". 그렇게 하면 살은 물론 머리와 마음도 간소해질 것 같은 느낌이다.(30)

김장배추를 심고 집으로 돌아와 쉬는데 엄마가 태홍에게 전화를 하셨다. "이 말 해주려했는데 까먹어서. 얼마 전 우리 밭에서 고구마꽃을 봤어. 좀처럼 보기 어려워 행운을 가져다주는 꽃이라는데, 네가 사온이 가졌을 때 고구마꽃이 많이 피었었거든. 그래서 또 무슨 좋은 일이 있으려나 싶어서 말해주는 거야. 사는 일 힘들지만 좋은 일들도 있을 거야. 힘 내고. 그런데 애비는 왜 얼굴이 그리 까맣다니? 어디 몸이 안 좋은 건 아니지?"
행운, 좋은 일....... 솔직히 내게 일어났으면 좋겠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시겠지. "건강히, 큰 일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게 행운이고 좋은 일인 거여."(28)

비록 관철시키지는 못했지만 이번에도 강남은, 계급의식이 가장 투철하다는 평에 걸맞게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움직였다. 그들에게 복지란 '세금을 더 내야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계급에는 환상도 희망도 미래도 없다. 오직 피 땀 흘려 모은 곳간에서 쌀 한 톨 내어줄 수 없는 현재만 있을 뿐. 멋지다.(24)

장마가 끝날 무렵, 거실에 비가 새고 벽과 천장에 곰팡이가 창궐에 주인아저씨에게 와 보시라 했다. 집을 둘러본 아저씨 왈 "지난 해 고친다고 고쳤는데 왜 이러지? 당장 어찌할 수도 없고. 이사 가셔야겠네."
하여 서울에서 양평으로 이사를 온 지 넉 달 만에 다시 짐을 꾸리게 되었다. 근 석 달 동안 곰팡이와 함께 사느라 우울했던 태홍이 여기저기 시시때때로 발품을 팔고 보고 묻고 보고 또 물어 강 건너 강상면 교평리에 세를 얻었다. 한가위가 지나고 나면 옮겨갈 것이다. 교통편도 늘어나고 읍내까지 걸어서 이십 분 쯤. 볕과 바람이 잘 드나들고 시야도 탁 트인 2층이다. 허름하고 좁은 슬라브지만 세 식구 앉아 풍경을 보며 밥 먹을 만한 테라스(?)도 있다.
살다보면 또 어떤 문제가 생겨날 지 알 수 없으나 문목수의 덕담을 기대한다. "형, 전화위복이고 새옹지마일 거예요."(23)

그림과 사진이 예쁘다고, 안구정화 하러 가끔 오겠노라고 묘묘猫昴라는 분이 방명록에 글을 남겼다. '예쁘다'는 낱말을 지나치지 못하고 한참 바라보는데, 묘하다.
몇 해 전, 개인전 서문을 써준 이선생의 글이 떠오른다. 글의 말미를 거칠게 요약해보면 이렇다. 다음 전시를 기대해본다고. 허나 예쁘게 그리진 말라고. 예쁘다는 것은 치장이고 그 치장이 진심을 가린다고.
그때도 지금도 예쁜 것을 찍으려 하지도 예쁘게 찍으려 하지도 않으며 예쁜 것을 그리려 하지도 예쁘게 그리려 하지도 않는데 예쁘다면, 그게 내 감성이고 한계일까? 여전히 나는 관조적 낭만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 걸까? 그것도 예쁘게?(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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