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32

노트 2013. 3. 21. 10:22


꿈 이야기. 대학원에 입학을 한다. 학부생들이 환영의 인사를 종이에 적어 전해준다. 내게 전해진 것들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읽다 사진이 인쇄되어 있는 두 장의  출력물에 시선이 멈춘다. 둘 다 어두운 배경의 흑백사진이다. 한 장의 사진, 왼쪽에 솟아오른 산에서 이제 막 화산이 터져 분출하기 시작하고 있고 오른쪽 봉우리에 서서 그 광경을 두려움에 떨며 지켜보는 한 무리가 있다. 무리 중 한 사람이 나였다가 다른 이였다가 변검처럼 변한다. 다른 한 장의 사진, 마치 잘 깎은 연필 같은 봉우리에 사람들이 간당간당하게 서 있다. 사진에는 그들의 이름이 연필로 쓰여 있는데 읽을 수는 없다.(19)
 

그녀가, 내게 어린왕자를 소개시켜 준, 별은 반짝이는 게 아니라 떨고 있는 거라 가르쳐 준 그녀가, 조동진의 행복한 사람을 들으며 울던, 봄의 연두 그 순간이 봄의 전부란 걸 알려준 그녀가 노래를 부른다. “집으로 가는 길에 제일 보고 싶은 이는 내가 죄 지은 사람.”(17) 

미텐발트에 있는 알프스 자락, 눈 위에 꽂힌 두 개의 스틱, 그 위에 씌워져 있는 흰색과 파란색의 따뜻한 모자 둘. 눈꽃 핀 낮은 침엽수가 있고 멀리 봉우리에서 눈이 날려 구름이 된다. 조카가 보내온 아름다운 사진. 그들을 축복하기도 전에 새장에 갇혀 있는, 바람의 딸 태홍이 생각나 눈이 붉어진다.(15) 

전철에 앉아 가는데 앞에 선 여자의 짙푸른 외투가 열려있다. 받쳐 입은 베이지색 실크 브라우스가 반짝인다. 그 속의 가슴도 봉긋하다. 검은 레깅스 일색이던 여자들의 다리도 드문드문 맨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열고 벗어야 할 때인가. 이 봄.(14)  

정식定食, 폼은 나지만 좋은 메뉴는 아니다. 과하다. 남아서 과하고 다 먹어도 과하다.(12)  

앞산 달 그림자가 잔설에 드리운다. 벚나무 가지에 초롱초롱 별들이 걸려 있고 북두칠성은 뒷산 낙엽송 사이에 떠 있다. 북두칠성 알파별인 두베Dubhe에서 다섯 걸음 사선으로 걸으니 북극성이 떨고 있는 듯 반짝이고 오리온은 달빛에 희미하다. 우주는 이해할 수 없는 것. 부처도 입 다물라 했다지 않은가. 다만 생각하기를, 이 평행우주를 관장하는 어떤 신이 있다면 분명 그는 우리의 희노애락에 아무런 관심도 없을 것이다. 그래야 이치에 합당하다.
소리가 들린다. 얼마만인가, 개울물 소리. 녹은 눈과 얼음이 소리를 내며 흘러가고 있다. 우주와 달리 봄은 참 친절하고 소소하다. 지나온 두 달 쯤, 몸 풀었다 생각하시고 이제 다시 시작해도 괜찮다며 다독인다. 기특하지만 이 친절한 봄봄씨에게 중독되면 안 되는데. 어쨌든 좋다. 물, 흐르는 소리.(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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