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33

노트 2013. 3. 29. 13:04

태홍이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어제 온에게 엄마는 세상에서 온이를 제일 사랑한다고 했더니 이렇게 묻네요. ‘엄마는 엄마를 사랑하는 건 얼만큼 이예요?’ 자식이 스승이네. 그려](29)

밤을 새우며 장준하 선생 만장을 쓰다 막걸리 한 잔 하는데 갓 쉰이 넘은 이응이 요즘 맹연습 중이라며 사철가를 부른다. 허벅지를 두드려 장단을 맞추는데 어설프지만 그의 인생이 담겨 있는 마음의 소리여서 진득하다.

이산 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 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허구나.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늘 백발 한심하구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왔다 갈 줄 아는 봄을 반겨 헌들 쓸데 있나. 봄아 왔다 가려거든 가거라. 니가 가도 여름이 되면 녹음방초승화시라. 옛부터 일러 있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돌아오면 로삭풍 요란해도 제 절개를 굽히지 않는 황국단풍도 어떠한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돌아오면 낙목한천 찬바람에 백설만 펄펄 휘날리어 은세계가 되고 보면 월백 설백 천지백 허니 모두가 백발의 벗이로구나. 무정세월은 덧없이 흘러가고 이 내 청춘도 아차 한번 늙어지면 다시 청춘은 어려워라. 어화 세상 벗님네들 이내 한말 들어 보소. 인간이 모두가 백년을 산다고 해도 병든 날과 잠든 날 걱정 근심 다 제하면 단 사십년도 못 살 인생, 아차 한번 죽어지면 북망산천의 흙이로구나. 사후에 만반진수 불여생전 일배주만도 못하느니라. 세월이 세월아 세월아 가지 말어라. 아까운 청춘들이 다 늙는다. 세월아 가지를 마라. 가는 세월 어쩔거나. 늘어진 계수나무 끄끝머리에다 대랑 매달아 놓고, 국곡투식 허는 놈과 부모형제 불효하는 놈과 형제 화목 못허는 놈 차례로 잡아다가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내 버리고, 나머지 벗님네들 서로 모여 앉아서 한잔 더 먹소. 그만 먹게 하면서 거드렁거리고 놀아보세.

소리가 나온 김에 사철가의 여러 버전을 찾아 듣는데 김수연의 소리가 좋다. 꾸밈이 없고 한 소리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나 그 틈이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갈래들이 서로 오고가며 메워 깊고 단단하다. 이응이 말한다. “아무리 그래도 칠십을 훌쩍 넘긴 파란의 사내가 막걸리 한 잔 하며 부르는 소리에는 못 미칠 거야.”(26)

햇볕이 좋아 온과 옥천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나선다. 키티 씽씽이를 타고 가던 온이 묻는다. “진짜 봄이예요? 아빠?” “그래. 봄이지. 온이는 봄이 어때?” 답하고 물으니 온이 웃으며 말한다.“좋아요. 말랑말랑해.” 운동장 초입에 씽씽이를 주차시키고 공을 찬다. 노란 공을 쫓아 쉼 없이 뛰어다니는 아이를 햇볕도 쉼 없이 말랑말랑 쫓아다닌다. 아이와 그림자가 함께 뛰어다니는 운동장을 보며 문득 생각하기를‘빛과 그림자는 진정 한 몸이로구나.’
아, 무거운 몸. 숨이 차 잠시 쉬자고 아이를 꼬드겨 놀이터 정자에 앉아 헉헉거리는데 온이 버려진 종이컵을 주워 모래를 담고는 짤막한 나뭇가지 하나 꽂아 들고 와 권한다. “아빠, 마셔. 봄 주스야.”벌컥벌컥 마시는데 목이 따끔거린다. 봄은 때로 가시 같단 말이지.
온이 미끄럼을 타는 동안 운동장 가에 줄지어 서 있는 산수유나무를 본다. 작고 노란 꽃망울들이 산형꽃차례로 뭉쳐 마치 하나의 꽃처럼 웅크리고 다닥다닥 가지에 붙어있다. 터지기 직전의 앳된 긴장감이 느껴진다. “온, 긴장하고 뛰어다녀볼까?”했더니 “좋아. 그런데 긴장이 뭐예요?” 묻는다. “긴장? 그런 게 있어. 봄 같은 거.” 답하고는 공을 뻥 - 멀리 차고 아이와 함께 쫓아 뛰어간다.(25)

WMAP 위성이 관측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의 눈에 보이는 물질들(산, 행성, 별, 은하 등)은 우주를 이루고 있는 총물질과 에너지의 4%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 4% 중 대부분은 수소와 헬륨이 차지하고 있으며, 무거운 원소는 0.03% 밖에 되지 않는다. 즉, 우주의 대부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지의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물질들은 우주의 0.03% 밖에 되지 않는다.-[평행우주] 미치오 카쿠 지음, 박병철 옮김, 김영사, 2006, 33쪽(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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