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72

노트 2015. 7. 17. 23:12

20  커다랗고 풍성한 칠엽수에서 포르르- 무언가 떨어진다. 참새다. 참새가 날아내려 지방도로의 낡고 노란 중앙선에 앉는다. 넘나들 수 없게 설계된 금지의 경계에서 고개를 까닥이며 세상을 살피다 호로록- 미련도 없이 날아오른다. 금기란 필요한 자들이 자신들의 삶을 위해 만든 것.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다.

  

 

 

17  꿈. 온 가족이 할머니 제사를 준비하고 있다. 나는 혼자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식구들의 신발을 하나하나 나무로 깎아 만들고 있다. 신발들은 뭉뚝하고 졸하다. 어여쁘지 않고 투박하다. 색도 입힌다. 총천연색이다. 제사가 시작될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시간에 쫓기며 손길이 빨라진다. 마음이 급하다. 마지막으로 할머니 신발을 만드는데 자꾸 작아지더니 도저히 할머니가 신을 수 없이 작아져 내 한 손에 고스란히 들어온다.

 

14  육번 국도, 흔하디 흔한 개망초 군락 옆에 앉아 원과 온을 기다린다. 언젠가 '흔한 삶'에 대해 환기시켜주었던 개망초를 보며 생각한다.

'그때 흔한 삶에 대한 생각은 일종의 자책과도 같은 것이었다. 헌데 흔한 삶과 특별한 삶이란 게 있을까? 그런 건 없을 것이다. 그건 비교와 구분과 필요가 만들어낸 것. 다만 존재가 있을 뿐이다. 존재는 자책을 하지 않는다.'

늦은 햇살이 개망초에게도 내게도 흔하게 또는 특별하게 그리고 공평하게 내리쬔다. 

 

 

 

12  할머니 기일에 절을 드릴 때마다 이 못난 손자라 고백하며 죄송해서 울었다. 오늘은 고맙다고 말씀드렸다. 당신은 내가 태어날 때 그저 존재 자체로 나를 기뻐하셨을 것이고, 나와 가족을 위해 스스로 생을 마치실 때도 그러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실 것이라는 것을 이제서야 어렴풋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11  오랜만에 분홍집으로 돌아왔다. 고요해서 좋다.

 

 

'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15081  (5) 2015.08.04
15073  (3) 2015.07.25
14111  (1) 2014.11.13
14103  (0) 2014.11.04
14102  (0) 2014.1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