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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2014. 10. 23. 15:24

13. 키즈까페. 아이가 트램펄린에서 방방 뛰며 노는 동안 가만히 앉아 있다 비치되어 있는 책꽂이에서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거의 모든 것에 관한 거의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 '무'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무에서 생겨난 만물, 그 만물에 남아 있는 무의 흔적이라.......  그래서 세상은 허무를 그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열광의 정점에서나 혹은 쓰라린 좌절의 순간에 돌연 모든 것이 무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빠져들게 된다. 그건 우리의 만물 속에 만물이 빠져나온 무의 흔적이 잔존해있기 때문이다. 폴 발레리는 이렇게 쓰고 있다. '신은 무를 가지고 이 세상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무는 만물 속에서 배어나온다.' - 장 도르메송

17.  낡은 의자 하나가 쇠사슬에 묶인 채 탁자와 연결되어 있다. 모두 피곤하고 낡은 풍경 속에 오직 쇠사슬만이 윤택하다.
의자는 네 발로 살금살금 때로는 총총히 도망갔을 것이다. 도망가는 걸음걸음 새로운 세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붙잡혀 왔고 또 탈출을 감행했을 것이다. 그때마다 새로운 날들이었을 것이다. 가장 멀리 어디까지 갔었을까? 주인은 의자를 몇 번이고 잡아와 어르고 달래고 윽박지르고 간지럽히다 끝내 의자를 묶어 놓았을 것이다.

18.  원이 백합을 한 아름 품고 돌아왔다. 봉우리들뿐이었다. 봉우리는 날카로워 보였다. 굳게 닫혀 열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 봉우리로만 살다가는 이들도 있지 않은가. 원은 세상에서 처음 보는 꽃인 것처럼 조심스레 유리잔에 물을 채우고 꽂았다. 원은 말했다. "열릴 거야 분명. 내 마음이 그래"
며칠 사이, 하나 둘 셋 넷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만개한 꽃과 원의 가슴을 번갈아 들여다보았다. 빨간 스웨터 속 봉긋한 젓 너머, 마음이 콩 콩 콩 콩 뛰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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