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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2012. 4. 14. 00:37

가장 잔인한 프로그램 중의 하나가 음식을 소개하는 방송이 아닐는지. 살아 있는 생명을 칼질하고 산채로 뜨거운 물에 집어넣는 데도 사람들은 그저 즐겁다.(10)

아버지 책장에서 책 한 권 꺼내 표지를 본다. 부제가 달려 있다. 「삶에 지친 영혼을 일깨우는 각성과 치유의 언어」. 거창하다. 몇 쪽 읽어본다. 부제가 참 무색하고 낯간지럽다. 자신이 쓴 책에 어떻게 저런 부제를 넣을 수 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08)

온이는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 아침 티브이를 본다. EBS 만화. 오늘은 '꼬마버스 타요'를 한다. 함께 앉아 보는데 감동적이다. 어찌 저렇게 서로 상대방을 배려할 수 있으며,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슬기로울 수 있을까. 어찌 저리 마음이 투명하단 말인가. 마음속에 화가 들어차있는 나로서는 다가갈 수 없는 경지.(07)

책을 읽다 이런 구절을 보았다. "나이 오십 이전의 나는 정말 한 마리의 개에 불과했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나도 따라서 짖어댔던 것이다. 만약 남들이 짖는 까닭을 물으면 그저 벙어리처럼 쑥스럽게 웃기나 할 따름이었다". 책을 접고 생각하기를, 오십이 되면 나도 개에서 벗어날 수 있으려나? 
글쓴이가 궁금해 이지李贄라는 인물을 찾아본다. 중국 명대의 유학자. 호는 탁오卓吾로 양명학 급진파인 태주학파 중에서도 가장 좌파적인 인물. 전통의 억압을 거부하고 자아 중심의 혁신사상을 부르짖었었다. 남녀평등론을 주장하기도 했으며 금욕과 신분차별을 강요하는 예교禮敎를 부정하고 인간성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본능을 긍정했다. 반유교적인 교설(敎說) 때문에 자주 정부당국의 박해를 받았고 자유분방한 행동과 언론활동으로 저서가 금서 처분을 받기도 했다고. 마지막에는 탄핵을 받고 투옥되어 옥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위 글은 '책을 불살라 버리다'는 뜻을 가진 속분서續焚書 중에 나오는 대목이다.(06)

친구가 말한다. "얼마 전에 문득 깨달았어. 목적 없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무슨 일을 하던 목표가 있어야 하고 그 지점에 다다르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해 왔지. 그렇게 살아왔고. 어쩌면 그래서 즐거움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지. 목표에 갇혔던 것인지도". 답한다. "내가 원하는 궁극적인 삶이 바로 그것이라네. 목적 없는 즐거움. 바삐 움직이되 생산하지 않는 삶. 나도 알 수 없는 생산물을 만들어내고 그것으로 돈을 만들지 않는 일상. 불가능하겠지? 생산물로 환전을 해야 먹고 살 수 있으니".(04)

꿈 이야기. 조그만 방, 둥그런 탁자에 둘러앉아 누군가와 시답지도 않은 수다를 떨고 있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니 비가 내리고 있다. 참 쓸모없는 말들이 난무하는구나, 느끼면서 이야기는 계속된다. 창밖을 보니 비가 그쳤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선다. 원소리 아버지 집 앞이다. 젖은 땅 위 여기저기 하얗고 노란 봄꽃이 피어나 있다. 그 꽃을 보며 나는 웃는다. 꽃들도 웃는다.(03)

읍내에서 옥천면소재지로 이사를 했다. 일 년 동안 세 번의 이사. 지칠 데로 지친 태홍이 말한다. "어쨌거나, 또 다시, 시작인 셈이지요. 그리고 봄이잖아요".(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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