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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2016. 3. 2. 16:19

08. "과학도 층위와 방법론이 다양한데, 보편적으로 인식되거나 영화를 통해 구현되는 과학의 대표명사는 저 멀리 앞서나가 있는 영역들이다. 예를 들어 초끈이론, 초중력이론이 대표적인 물리학 이론인 것처럼 소비되는 건 단지 그게 신기해 보이고 증명이 요원하기 때문이다. 과학,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이론적인 최전선보다는 그 뒤에서 물질적인 증거를 모으기 위해 시간을 보낸다." - 김상욱, 물리학자


07. 하루에도 몇 차례 롤러코스터를 탄다.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건 전혀 아니다.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헤매이는 것도, 행과 불행을 오락가락하는 것도 아니다. 롤러코스터는 아주 실질적인 두 정점을 오르내리는데 하나는 지금껏 상상해보지 않았던 '신체적 불편함'이고, 다른 하나는 익숙해서 알지 못했던 '신체적 편함'이다. 두구두구두구두구- 과연 몸은, 어찌될 것인가? 이 사이를 오르락내리락 춤을 추며 간다.


05. 봄비가 나린다. 봄비를 보며 봄비를 듣는다. 창문 너머 멀리 마을길로 검둥개가 간다. 봄비에 젖어서 길을 걸으며, 그 뒤를 누렁이가 따르고, 나 혼자 쓸쓸히, 그 뒤를 백구가 따른다. 마음을 달래도, 셋은 하얀 길을 졸졸졸 간다. 산꼭대기에서 내려온, 나를 울려주는, 안개가 기슭을 덮고 길까지 물들여 선경이다. 언제까지 나리려나, 아무도 모르는 세상의 뒤안길을 개들이 간다. 봄비.


04. 양평의 한낮 최고 기온이 무려 17도에 육박했다. 여기저기서 봄 봄 봄 소리가 튀어나왔고, 누군가는 서둘러 벚꽃을 입에 올리기도 했다. 창밖을 보니 걸음을 새로 배우는 이들 여럿이 치료사와 함께 볕을 맞고 밟으며 뒤뚱뒤뚱 걷고 있었다. 볕은 말랑하고 따끈하고 어려 보였다. 진정 봄인 게로구나. 나는 무엇을 할까? 사소하게, 다리를 덮고 있던, 겨우내 병실을 나설 때마다 붙어다녔던 땡땡이 무늬 요를 벗어던졌다.


03. 등교 첫 날, 파란만장할 학교생활을 미루어 짐작케 하는 온의 에피소드를 원에게 듣고 기록해 둔다.

하나. 학교 정문 앞. 원과 만나기로 한 온이 하룻만에 사귄 친구 둘과 등장. 원이 차에 타라고 하니 온이 말하길 " 얘네들이랑 우리집에 갈 건데?" 원이 오늘은 드림에 가야해서 안 된다고 하자 "엄마는 갔다 와. 난 친구들이랑 집에서 놀고 있을 게." 

둘. 드림 가는 차 안. 온이 말했다. "아까 걔네들이랑 학교탐험대 만들어서 탐험했어. 뒤로 갔더니 출입금지라고 써진 문이 있더라. 미니까 열려서 들어갔는데 어떤 고약한 육학년 형이 와서 왜 거기 들어갔냐면서 우릴 끌고 선생님한테 가더라. 교실에 들어갈 때 형이 내 손을 살짝 놓길래 막 뛰어서 도망갔어. 놀이터까지 가서 시소에 앉아서 일반인인 척 하고 있었지. 친구들은 교장선생님한테 혼났어."

셋. 한 반이 된 아랫집 민지의 증언. "사온이 오늘 선생님한테 혼났어요. 춤 춘다고 막 하다가 친구들 여럿을 쳤어요."


02. 온이 초등학생이 되었다. 가자면 학교에 갈 수도 있었지만 가지 않았다. 휠체어는 아무래도 좀 튈 것 같았기 때문. 대신 입학식을 마친 원과 온이 병원으로 와 짜장면을 함께 먹으며 나를 위로해주었다. 온에게 학교 들어간 기분이 어떠하냐 물었더니 조금 떨린다고 대답했다. 아마도 이내 적응하고 통통 튀어다닐 것이다. 궁금하고 기대된다. 이 명랑럭비공 같은 아이가 앞으로 만들어 낼 수많은 이야기들이. 그 이야기, 건강하고 따뜻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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