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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2016. 4. 21. 12:55

30. 불현듯 생각했다. 지금, 우주는 질서cosmos인가, 혼돈chaos인가? 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우주는 스스로 그러하여 지금과 다름없이 운행할 것이지만, 질서와 혼돈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나의 우주'는 재편될 수도 있지 않을까? 코스모스는 규칙, 섭리, 합리, 필연, 목적, 순응, 조화, 보편, 공공 등의 속성을 지니고 있고, 카오스는 그와 반대로 무질서, 불가사의, 우연, 충돌, 부조화, 개별, 무규칙, 가변 등의 개념과 연결되어 있겠지? 좀 알아볼까? 인터넷을 뒤적였다. 찾아 읽으며 카오스의 매력에 끌리고 있는데 '카오스모스chaosmos'란 이론이 눈에 들어왔다. 코스모스와 카오스를 대립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고 중첩된 것이라고 보는 개념이었다. 왠지 얄미웠다. 평소 회색도 색이고 사이도 철학이라 주장해왔던 나였지만 카오스모스라는 합성어로 잘 섞어 맛있게 버무린듯한 그 중간적 입장이 오늘은 좀 밉살스러웠다.


27. 생각을 접고 잠이 들 무렵, 내일 모레 육십이라는 옆 병상의 아주머니가 노래를 부른다. 남편의 소변을 빼내며, 낮고 고요하게 혼잣말을 하듯 들릴듯 말듯 부른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달 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젊은 연가가 구슬퍼 가고 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빈 손짓에 슬퍼지면 차라리 보내야지 돌아서야지 그렇게 세월은 가는 거야


26. 늦은 아침, 기능적 전기 자극 치료를 받으며 창문 밖을 본다. 떡갈나무 잎들이 어느새 손바닥 만해지고 무성해져 그 틈으로 하늘을 볼 지경이 되었다. 오늘도 작은 새들이 나무를 찾아와 이 가지 저 가지 옮겨 다니며 바쁘다. 역광을 받아 연두로 빛나는 잎. 그 잎을 희롱하듯 토독토독 흔들며 움직이는 새들....... 문득 읊조린다. 펄펄 나는 저 꾀꼬리 암수 서로 정다운데 외로운 이 내 몸은 누구와 함께 돌아갈까. 이천 년 전 유리의 시심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24. 일요일 아침마다 뜻하지 않게 보게 되는 프로그램 '영상앨범 산'.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곤 했다. 오늘은 완도군의 청산도. 섬 따순기미 슬로길 바람 유채꽃 범바위 매봉산 바다 광대나물 파랑 고성산 돌담 노래 나비 길....... 멍하니 바라보다 오늘도 어김없이 울컥.


21. 문을 여니 비가 내리고 있다. 굵고 낯설게 오고 있다. 땅은 빗물이 고여 호수처럼 찰랑이고 수면에서는 토 독 톡 도 무수한 파문이 간단 없이 피고 진다. 그 비 속으로 네가 걸어 들어간다. 배낭을 메고 캐리어를 끌며 안녕, 돌이켜 인사를 날리고 간다. 우리의 세상으로 홀로 네가 간다. 말 못할 시절, 몸과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며 살길래 저리도 가벼운가. 경이롭게도 물 위를 걷는 것처럼 사뿐히 간다. 그래도 나는 혹 네가 빠질까 하여 아슬아슬하게 지켜본다. 어느새 어둡다. 비가 내린다. 오만 년 전부터 오고 있는 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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