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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2016. 5. 12. 12:28

18. 원의 생일. 아침에 전화를 하니 아이가 받는다. 엄마 선물 뭐 해드렸냐 물으니 답하길 "어..... 어제 자기 전에 내가 미역국 끓였어요. 엄마랑 마트 가서 산 건데, 근데 3분 미역국이 아니라 2분 미역국이더라요. 2분. "


16. 운전 교육 첫째 날. 강사는 컨트롤러 뭉치 조작법만 간단히 가르쳐주고 바로 차로로 나섰다. 엑셀과 브레이크, 방향지시 버튼과 비상점멸 버튼이 함께 있는 컨트롤러를 오른손에 움켜쥐고 조심조심 차를 몰았다. 덜컥거리기를 수십 번. 겨우 도봉면허시험장까지 가 잠시 쉬다 조금 유연하게 병원으로 되돌아왔다. 차에서 휠체어로 옮겨 타려 할 때 퍼뜩 깨달았다. 내게 다리가 있다는 것을. 운전하는 동안 오직 눈과 두 손에 집중해 다리의 존재를 전혀 잊었던 것이다. 완전한 삼매경이랄까? 생각했다. 순간에 대한 집중이라는 게 이런 것이겠구나. 헌데  운전 중 내 다리는 정말 없었던 것일까? 생각에 없다면, 내 인식에 없다면 그건 없는 것일까?


15. 지하 마트에서 크림과 딸기 웨하스를 하나씩 사 가방에 넣고, 휴일이면 인적이 끊기는  2층 복도 끝 창가로 올라와 자리를 잡는다. 먼저 딸기 웨하스를 뜯어 멀리 도봉산을 보며 먹는다. 오랜만이다. 이 독특하고 가벼운 달달함. 다 먹고 옷에 낭자한, 어쩌면 웨하스의 정체성 중 하나일지도 모를 부스러기들을 탈탈 털어낸다. 물 한 모금 마시고 카렌 암스트롱이 쓴「스스로 깨어난 자, 붓다」를 읽는다. 삶의 괴로움과 세상의 고통에 맞서지 않고 애써 외면한 채 받드는 '긍정적 사고'라는 신앙에 대한 경고를 본다. 나도 도망갈 때 종종 꺼내 써먹는 허망하고 얄팍한, 아무 것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관념의 덩어리. 고타마가 본격적으로 세상으로 나아갈 즈음 책을 덮는다. 크림 웨하스를 꺼내 먹으며 창밖을 본다. 비가 온다더니 날이 한껏 흐려진다. 다 먹고 의식처럼 부스러기들을 털고 유튜브를 연다. 다니엘 바렌보엠이 연주하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를 1번부터 듣기 시작한다. 때에 맞춰 비도 내리기 시작한다. 산봉우리들이 시나브로 사라진다. 예전 같았으면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고, 동시에 과자를 먹었을 것이다. 쉽지 않아 자주 실패하지만 요즘은 무엇이든 하나만 하려한다. 볼 때는 보기만 하고 들을 때는 듣기만 하고 먹을 때는 먹기만 하고 괴로울 땐 괴롭기만 하고. 그게 무상하여 변하고 사라지는 순간들에 대한 예의이지 싶다.  


14. 휴게실 창가에 앉아 밖을 보니 사면 숲에 하얀 찔레꽃이 피어 있다. 어느새 네가 필 때가 되었구나. 해마다 처음으로 찔레꽃을 보면 늘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노래를 부른다. 오늘은 아주 고요하게 노래를 삼키듯이 부른다. 찔레꽃 피면 내게로 온다고 노을이 질 땐 피리를 불어준다고 그랬지 찔레꽃 피고 산비둘기 날고 서녘바람에 찔레꽃 떨어지는데 너는 이렇게 차가운 차가운 땅에 누워 저기 흐르는 하얀 구름들만 바라보고 있는지 음 음 바라보고만 있는지 너는 이렇게 차가운 차가운 땅에 누워 나도 그렇게 네가 있는 나라 보았으면 좋겠다 좋겠다 음 음 좋겠다


13. 깊은 밤, 동생이 문자를 보냈다. '술 한 잔 하고 집에 돌아와 아껴두었던 thin lizzy의 southbound를 맥스 볼륨으로 듣다 형 생각이 났고 눈물이 났다'고 했다. 그리고 미안하다 했다. 답은 보내지 않고 유튜브에서 southbound를 찾아 들었다. 동생 생각이 났고 눈물이 났고 미안했다. thin lizzy의 음악을 들으며 이렇게 눈물을 흘리는 형제는 아마도 세상에 또 없을 것이다.


12. 호흡을 한다. 코를 통해 들고 나는 숨을 느낀다. 내쉬는 숨이 더 따뜻하다. 뭘까? 세상에서 들어와 내 몸을 돌고 다시 나가 세상과 섞이는, 그 과정을 끊임 없이 반복하는 이 숨이란 것은. 언젠가는 끊어져 내 우주를 해체할 이 숨이란 것은. 숨에 집중하려 해도 잡생각들이 숨보다 더 자주 들락거린다. 서툴지만 그래도 숨을 보려 애쓰는 와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지금 이 '순간'의 나는 이 순간 외의 그 무엇과도 비교하여 판단할 수 없는, 그저 하나의 '온전하게 존재하는' 실재구나. 그렇다면, 순간에 온전하다면, 삶을 순간의 향연이라 볼 때 매순간 온전할 수 있는 것 아닐까?  


11. 한방 진료실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익숙한 왈츠가 들려왔다. 의사가 어깨와 다리에 침을 꽂고 나간 후 눈을 감았다. 음악은 라벨의 볼레로로 바뀌었다. 반복적인 멜로디를 듣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꿈을 꾸었다. 침대에 앉아 있던 내가 천천히 일어나 섰다. 그리고 한 발 한 발 신중하게 딛었다. 바지를 말아올려 종아리를 드러낸 채 맨발로 걸었다. 발걸음은 편안했고 마음은 환했다. 침을 빼러 간호사가 들어오는 소리에  깜짝 잠이 깼다. 다리를 움직여 보았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는 다리가 낯설고 이상할 만큼 선명한 꿈이었다. 하루 종일 꿈 속의 그 '몇 걸음'이 머리와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시달릴 지경이었다. 하여 잠들기 전 그 '걸음'을 떠나보내려 이렇게 기록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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