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63

노트 2016. 6. 23. 10:37

27. 합하여 백육십, 각각 팔십인 두 노인은 아침 다섯 시 반에 일어나 남편은 살구를 따서 씻고  아내는 삼단 찬합에 오이소박이와 고추멸치조림, 두부조림을 차곡차곡 담았다. 일곱 시 십 분, 둘은 오늘 첫 버스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서 느릿느릿 큰 길로 나가 기다렸다. 일곱 시 삼십 분에 온 버스를 타고 가 홍천터미널에 도착하니 여덟 시가 되었다. 상봉행 표를 끊고 오십 분을 기다렸다. 아내는 의자에 앉아 연신 시계를 들여다보며 시간을 재촉했고, 남편은 두 번 삐걱거리며 흡연실로 가 담배를 피웠다. 여덟 시 오십 분에 시외버스가 승강장으로 들어와 올라 탔다. 완행인 버스는 양덕원과 용문, 양평 등을 거쳐 두 시간 동안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오는 동안 아내는 스쳐지나가는 창밖 풍경에서 눈을 떼지 않았고, 남편은 눈을 감고 가며 조금씩 죄어오는 고관절 통증에 신경을 썼다. 상봉터미널에 내린 노부부는 절룩거리며 걸어나와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가 아들을 만났다. 집을 나선지 네 시간 만이었다. 아들은 휠체어에 앉아 노부부를 맞이했다. 아들은 그닥 변함이 없었다. 아내는 살구와 반찬을 풀어 냉장고에 넣었고 남편은 아들에게 평범한 안부를 물었다. 아들은 작은 노부부를 올려다보며 소매를 올려부치고는 팔둑의 근육을 자랑하며 웃었다. 


24. 속칭 '코끼리'로 불리는 상하지운동기구를 굴리고 있었다. 한 여자가 슬며시 다가왔다. 국립재활원에서도 잠깐 같이 있어 안면은 있으나 말을 섞어보지는 않은 이였다. 그가 말했다. 네이버에서 아저씨 그림 찾아봤는데 그림이 되게 외롭더라구요. 어떻게 내가 그림 그린다는 걸 아느냐 물었더니 누구에게 들었다며, 다른 그림들도 다 그렇게 외롭냐고 물었다. 대체로 그러하다고 대답하자 왜 그렇게 외로운 그림을 그리느냐고 또 물었다. 그의 갑작스런 출현과 물음에 살짝 당황해하며 얼버무리듯 말했다. 뭐, 살아간다는 게 천상 쓸쓸하고 외로운 거잖아요. 내 대답을 들은 그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 휠체어를 밀며 천천히 사라졌다. 코끼리에 박차를 가하며 생각했다. '뱉고 나니 외롭고 쓸쓸하다는 말이 참 통속적이고 가벼웁고나! 삶과 그림이 단지 그것 뿐이라면 그 또한 얼마나 피상적이고 허허로울까. 내가 그렇게 살아왔구나. 삶에는 그런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어떤, 비록 범속하더라도 허기지지 않는 비밀이 있을 것이다.'    


22. 원이 사진 한 컷을 문자로 보냈다. 그리곤 덧붙였다. '사온이 웃겨. 어디서 이 노랠 들었나 봐요. 부르고 싶으니까 유튜브에서 찾아서는 이렇게 한글로 받아 적더라. ㅋㅋ 옛날에 우리 팝송 배울 때처럼.' 사진을 확대해 읽으며 킥킥 웃었다. 삐뚤빼뚤 빠르고 생기 있는 글씨체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제목 : Your are my sunshine(1절) 유어마이선샤인 마이올리선샤인 유메잌미해피↑ 왠스카이더그레이 유메벌노튜 헬머치알러뷰 플리돈테잌마이 선샤인어외이」


'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16072  (0) 2016.07.12
16071  (2) 2016.07.04
16062  (0) 2016.06.13
16061  (4) 2016.06.01
16053  (2) 2016.05.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