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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2019. 5. 4. 08:35

09  공무원연금 승계 관련 위임장을 작성해야 해서 원소리로 갔다. 서류를 작성하고, 아버지 방으로 들어가 책상 서랍을 뒤적이다 하이엔드 디지털카메라를 발견했다. 10년 넘게 거칠게 사용했던 니콘 D80이 맛이 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된 터라 아버지의 카메라를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살펴보니 배터리가 방전되어 있었다. 배터리를 갈아 넣고 시험 삼아 집안으로 들어온 그림자를 몇 컷 찍은 뒤 컴퓨터에 연결해 사진폴더로 옮긴 뒤 확인해보았다. 아버지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이 들어 있었다, 원소리 집 주변의 꽃과 노을의 순간들....... 생각했다. 꽃처럼 살다 노을처럼 가신 건가? 그렇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08  아이가 말했다. 할아버지 돌아가셔서 아쉬운 게 또 하나 생각났어. 이젠 팔봉산막걸리 한 모금 얻어 마실 수 없는 거.

어버이날이라고 원소리로 찾아가도 만날 수 없으니 당신의 부재가 이제 실감난다. 보고 싶어 사진을 뒤적이다 생각한다. 사진과 기억 속에 이미지로 남아 있는 육신은 이제 유골로만 남았는데, 그게 세상에 존재했던 당신의 전부인가?

 

03  급한 서류가 있어 병원을 찾았는데 몇 가지 검사가 필요하다 했고, 검사 시간이 오후에 잡혀 병원 마당을 한적하게 굴러다니고 있다. 풀밭에는 뽀리뱅이 별꽃 토끼풀 흰씀바귀 꽃마리 꽃다지 갈퀴나물 선개불알풀 씀바귀 고들빼기 괭이밥 봄맞이꽃 냉이 제비꽃 황새냉이 민들레 등이 꽃을 피우고 있고, 지칭개가 막 작은 몽우리를 만들기 시작한다. 볕이 좋다. 이 귀한 햇빛, 몸과 몸을 둘러싸고 있는 마음을 열어 양껏 받아들인다. 그렇게 산책을 하다 푸른 하늘 멀리 날아가는 새를 본다. 저 새가 보는 하늘과 내가 보는 하늘은 얼만큼 다를까? 분명 다른 세상일 것이다. 색도 다르고 질감도 온기도 다를 것이다. 문득, 저 새의 세상을, 새가 보는 하늘을, 그 전혀 다른 세상을 구경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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